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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일 국교회복에 관한 에도시대의 역사서술 : 17세기의 성립과정을 중심으로 = The Historical Descriptions of the Edo Periodon the Restoration of the diplomatic Relationbetween Joseon and Japan : Focusing on the process of establishmentin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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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37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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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17세기 일본에서 형성된 조일 국교회복에 관한 역사서술에 주목하였다. 조일 국교회복에 관한 역사서술의 작성 주체는 막부와 쓰시마번이었다. 에도시대 초기의 자료 부재로 ...

      본 논문에서는 17세기 일본에서 형성된 조일 국교회복에 관한 역사서술에 주목하였다. 조일 국교회복에 관한 역사서술의 작성 주체는 막부와 쓰시마번이었다. 에도시대 초기의 자료 부재로 인하여 막부의 역사 편찬작업은 번이 제공한 기록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쓰시마번이 제공한 기록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보충에 그치지 않고, 국교회복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막번 관계의 성립 경위와 자신의 존재 의의를 해명하는 수단이 되었다.
      실제 강화교섭의 시작은 1598년이었다. 하지만 17세기에 쓰시마번 측이 막부에 제출한 기록은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를 도쿠가와 창업사의 분기점으로 여기는 역사관에 맞춰 그보다 뒤인 1602년 혹은 1601년에 이에야스가 강화교섭을 지시하였다고 서술하였다. 한편 같은 시기 번 내에서는 새로이 발견된 외교문서를 기반으로 강화교섭의 개시를 분기점 이전인 1599년으로 간주하는 역사서술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17세기 단계에는 쓰시마번을 작성 주체로 하는 서로 다른 역사서술이 공존하고 있었다. 향후에는 이러한 역사서술들이 18세기 이후에 이어지는 막부의 역사서 편찬에 참고 자료로 활용되면서 어떠한 상호작용을 거쳤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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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荒木和憲, "「壬辰戦争」の講和交渉" 関口グローバル研究会 2019

      2 荒木和憲, "조일 강화 교섭 과정과 정탐사(偵探使)" 한국고전학연구소 (3) : 141-182, 2020

      3 김경태, "임진왜란 후 강화교섭기 국서문제의 재검토" 고려사학회 (36) : 43-86, 2009

      4 김문자, "임진왜란 이후의 朝․日국교재개와 德川家康" 중앙사학연구소 (44) : 151-186, 2016

      5 米谷均, "近世日朝関係における対馬藩主の上表文について" 154 : 1995

      6 米谷均, "近世初期日朝関係における外交文書の偽造と改竄" 41 (41): 1995

      7 "譜牒余禄"

      8 "當代記, 史籍雑纂 2" 国書刊行会 1911

      9 福井保, "江戸幕府編纂物 解説編" 雄松堂出版 1983

      10 平野仁也, "江戸幕府の歴史編纂事業と創業史" 清文堂 2020

      1 荒木和憲, "「壬辰戦争」の講和交渉" 関口グローバル研究会 2019

      2 荒木和憲, "조일 강화 교섭 과정과 정탐사(偵探使)" 한국고전학연구소 (3) : 141-182, 2020

      3 김경태, "임진왜란 후 강화교섭기 국서문제의 재검토" 고려사학회 (36) : 43-86, 2009

      4 김문자, "임진왜란 이후의 朝․日국교재개와 德川家康" 중앙사학연구소 (44) : 151-186, 2016

      5 米谷均, "近世日朝関係における対馬藩主の上表文について" 154 : 1995

      6 米谷均, "近世初期日朝関係における外交文書の偽造と改竄" 41 (41): 1995

      7 "譜牒余禄"

      8 "當代記, 史籍雑纂 2" 国書刊行会 1911

      9 福井保, "江戸幕府編纂物 解説編" 雄松堂出版 1983

      10 平野仁也, "江戸幕府の歴史編纂事業と創業史" 清文堂 2020

      11 "武徳大成記"

      12 松本智也, "東アジア 遭遇する知と日本 : トランスナショナルな思想史の試み" 文理閣 2019

      13 柴田実, "本邦史学史論叢 下" 冨山房 1939

      14 "本朝通鑑続編"

      15 "朝鮮通信之覚書"

      16 松浦允任, "朝鮮通交大紀" 名著出版 1978

      17 田代和生, "書き替えられた国書 : 徳川・朝鮮外交の舞臺裏" 中公新書 1983

      18 中村栄孝, "日鮮関係史の研究 中・下" 吉川弘文館 1969

      19 長正統, "日鮮関係における記録の時代" 50 (50): 1968

      20 "日本朝鮮和好再興之次第"

      21 林鵞峰, "方長老朝鮮物語附柳川始末, 史籍集覽 第28冊" 臨川書店 1967

      22 李啓煌, "文禄・慶長の役と東アジア" 臨川書店 1997

      23 米谷均, "対馬宗家文書第Ⅰ期 朝鮮通信使記録 別冊下" ゆまに書房 2000

      24 古川祐貴, "対馬宗家と朝鮮御用老中" 831 : 2017

      25 "寬永諸家系圖傳"

      26 規伯玄方, "家康公初命和睦次第幷信使來朝事(『対馬宗家文書第Ⅰ期 朝鮮通信使記録 別冊下)" ゆまに書房 2000

      27 鈴木棠三, "宗氏家譜" 村田書店 1977

      28 藤本幸夫, "宗家文庫蔵朝鮮本に就いて : 『天和三年目録』 と現存本を対照しつつ" (99・100) : 1981

      29 池内敏, "大君外交と「武威」 : 近世日本の国際秩序と朝鮮観" 名古屋大学出版会 2006

      30 近藤守重, "外蕃通書" 国書刊行会 1905

      31 洪性德, "壬辰倭亂 直後 日本의 對朝鮮 講和交涉" 3 : 1995

      32 石川寛, "境界のアイデンティティ" 岩田書院 2008

      33 小宮木代良, "境界のアイデンティティ" 岩田書院 2008

      34 "善隣通書"

      35 閔德基, "前近代東アジアのなかの韓日関係" 早稲田大学出版部 1994

      36 田中健夫, "中世対外関係史" 東京大学出版会 1979

      37 마츠모토 토모야, "18~19세기 對馬 지식인들의 ‘藩屛’론 - 역사서 편찬에 보이는 자아인식 형성-" 한일관계사학회 (66) : 223-26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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