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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8세기 후반 쓰시마 간사재판(幹事裁判)의 교섭 검토 = A Study on the Activities of Tsushima Domain’s Gansa Jaepan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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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45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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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details of negotiations the Gansa jaepans from Tsushima Domain engaged in at Joseon during the late eighteenth century. Gansa jaepan (幹事裁判) has been loosely defined as officials who travel overseas t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details of negotiations the Gansa jaepans from Tsushima Domain engaged in at Joseon during the late eighteenth century. Gansa jaepan (幹事裁判) has been loosely defined as officials who travel overseas to handle negotiations on issues apart from extending the period of trading Gongjakmi (公作米), the Joseon rice traded for Japanese cotton, or escorting diplomatic missions from Joseon such as Tongshinsa(通信使) and Munwihaeng(問慰行). As such, what sort of negotiations each Gansa jaepan was exactly involved in has not yet been sufficiently studied.
      This study therefore focuses on three figures known to have served as a Gansa jaepan: Matsuura Sanji (松浦賛治), Shimao Tadaemon (嶋雄只右衛門), and Toda Sanzaemon(戸田三左衛門). By investigating why they traveled to Joseon, what their negotiations specifically involved, and how those negotiations ended should be able to offer clues as to what surfaced as issues in the Joseon-Japan relations during the late eighteenth century and how those issues unfolded.
      Matsuura Sanji came to Joseon in 1754 to ask for an extension to the period of ginseng and Gongjakmi trade. However, he returned to Tsushima Domain only after staying about a month at the Japanese guest house called waegwan and failed to finalize the negotiation. This abrupt end to his visit to Joseon as a jaepan was caused by unexpected developments that occurred in the early 1750s. Because Tsushima Domain repeatedly refused to accept Yedansam (禮單蔘), the ginseng the Joseon government gifted to Japanese envoys, and asked for it to be replaced with a different item, Joseon banned ginseng trade with the domain. This in turn made it highly uncertain as to whether an extension would be granted for the trade of Gongjakmi. In the case of Shimao Tadaemon, he was dispatched to Joseon in 1765 to convey the news that the Edo bakufu granted permission for Joseon to send a Munwihaeng mission the following year.
      As for Toda Sanzaemon, his visit to Joseon in 1771 was related to the Edo bakufu's financial aid that emerged as a major issue for Tsushima Domain in the 1760s. In 1770, the Edo bakufu provided financial aid to the domain to encourage its efforts in restoring the severed trade relations with Joseon. The domain thereby dispatched Toda under the pretext of reviving trade with Joseon as per the bakufu's orders. However, the Tsushima Domain's claim that its officially authorized trade with Joseon had been discontinued was a deception to elicit intermittent financial aid from the Edo bakufu. In actuality, such trade continued up until the nineteenth century albeit in smaller volumes. The Tsushima Domain's scheme to obtain a letter from Joseon confirming it will be impossible to revive official trade and present that letter as proof of discontinued trade was already set in motion by the time Toda was sent to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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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의 목적은 18세기 후반 조선에 파견된 쓰시마의 간사재판이 어떠한 교섭을 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종래 간사재판으로 분류된 마쓰우라 산지(1754), 시마오 다다에몬(176...

      본고의 목적은 18세기 후반 조선에 파견된 쓰시마의 간사재판이 어떠한 교섭을 했는지 규명하는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종래 간사재판으로 분류된 마쓰우라 산지(1754), 시마오 다다에몬(1765), 도다 산자에몬(1771)에 주목하여 그들이 조선에 건너온 이유, 조선과 협상한 내용과 협상의 결말을 상세히 고찰하였다. 18세기 후반 간사재판의 사례 연구는 동시기 조일통교에서 쟁점이 되었던 사안이 무엇인지, 그것의 전개 양상은 어떠했는지를 규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마쓰우라 산지는 인삼구무(求貿) 매매(賣買)와 공작미 연장을 조선에 요구하기는 했으나 왜관에 온지 1개월여 만에 귀국하여 교섭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의 재판사행이 이런 식으로 끝난 데에는 1750년대 초반, 쓰시마의 거듭된 예단삼 점퇴와 교체요구로 인해 조선의 반발이 고조되어 인삼매매가 금지되고 공작미 연장마저 불투명해지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마오 다다에몬은 1766년 문위행과 관련하여, 그 사행을 막부가 수락했다는 사실을 조선에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파견되었다.
      도다 산자에몬은 1760년대 쓰시마에게 중대 과제로 부상한 막부의 영속지원금 실현과 관련되어 있었다. 막부는 1770년, 조선과의 교역이 단절되었다는 점을 이유로 지원금을 하사하면서 교역 재흥에 힘쓸 것을 지시하자, 쓰시마는 ‘막부의 명령으로 교역재흥을 요청한다’는 명목으로 다다를 조선에 파견했다. 그러나 조선과의 사무역(개시무역)이 단절되었다는 주장은 영속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쓰시마가 막부를 기만한 것으로, 사무역은 19세기까지도 소규모로 계속되고 있었다. 쓰시마는 도다로 하여금 사무역 재흥이 어렵다는 조선 역관의 진문(眞文)를 받게 했고, 막부를 상대로 이것을 사무역이 단절된 증거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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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윤유숙, "조선후기 쓰시마 간사재판(幹事裁判)의 활동 검토" 한일관계사학회 (62) : 289-326, 2018

      2 윤유숙, "근세한일관계사료집Ⅱ-사쿠마진파치 보고서・죽도문담" 동북아역사재단 2018

      3 윤유숙, "근세 朝日통교와 非定例 差倭의 조선도해" 역사학연구회 (70) : 119-153, 2010

      4 米谷均, "雨森芳洲の対朝鮮外交-「誠信之交」の理念と実態-" 148 : 1993

      5 "邊例集要"

      6 荒野泰典, "近世日本と東アジア" 東京大學出版會 1988

      7 田代和生, "近世日朝通交貿易史の研究" 創文社 1998

      8 尹裕淑, "近世日朝通交と倭館" 岩田書院 2012

      9 森晋一郎, "近世後期対馬藩日朝貿易の展開-安永年間の私貿易を中心として-" 三田史學會 56 (56): 1986

      10 松浦京子, "松浦桂川書簡抄" 新潮社 1996

      1 윤유숙, "조선후기 쓰시마 간사재판(幹事裁判)의 활동 검토" 한일관계사학회 (62) : 289-3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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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森晋一郎, "近世後期対馬藩日朝貿易の展開-安永年間の私貿易を中心として-" 三田史學會 56 (56): 1986

      10 松浦京子, "松浦桂川書簡抄" 新潮社 1996

      11 "朝鮮王朝實錄"

      12 정성일, "朝鮮後期 對日貿易" 新書苑 2000

      13 長正統, "日鮮関係における記録の時代" 50 (50): 1968

      14 田代和生, "日朝貿易と対馬藩" 創文社 2007

      15 信原修, "対馬藩々儒・雨森芳洲の晩境と次男・松浦賛治の知行召し上げをめぐって" 23 : 2006

      16 "寛政重修諸家譜"

      17 "宗家記錄, 『裁判記錄 戶田三左衛門 壹・貳・参(共ニ五冊)』"

      18 "宗家記錄, 『裁判記錄 幾度九左衛門 往復状控壹・貳・参』"

      19 "宗家記錄, 『裁判記錄 幾度九左衛門 壹・貳・参(共ニ五冊)』"

      20 "宗家記錄, 『裁判記錄 嶋雄只右衛門 壹・貳・参』"

      21 "宗家記錄, 『每日記(江戶藩邸每日記)』, 宗家1-287"

      22 "宗家記錄, 『朝鮮交易断絶ニ付唐紅毛商売方対州役人江伝達仕候趣申上候書付』"

      23 "宗家記錄, 『御留守每日記(江戶藩邸每日記)』, 宗家1-291"

      24 "宗家記錄, 『御留守每日記(江戶藩邸每日記)』, 宗家1-290"

      25 "宗家記錄, 『御在府每日記(江戶藩邸每日記)』, 宗家1-286"

      26 "宗家記錄, 『御在府每日記(江戶藩邸每日記)』, 宗家1-284"

      27 홍성덕, "十七世紀 別差倭의 渡來와 朝日關係" 15 : 1992

      28 鶴田啓, "一八世紀後半の幕府・対馬藩関係ー近世日朝関係への一視覚ー" 23 : 1986

      29 "『通航一覽』 권132, 朝鮮國部 108"

      30 이혜진, "17세기 후반 朝日外交에서의 裁判差倭 성립과 조선의 외교적 대응" 8 : 1998

      31 李薫, "(対馬宗家文書第一期)朝鮮通信使記録別冊下" ゆまに書房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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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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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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