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gan’s(鄭晏) family clan is in Hadong(河東). Jeongan, his father and grandfather served as the high-ranking bureaucrat. Jeongan had started with Jinjumok(晉州牧) local official after take a past examination, and was appointed Kukjagam Ch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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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주 (동의대학교)
2018
Korean
鄭晏 ; 고려대장경 ; 분사대장도감 ; 하동 ; 양경사 ; 私財 施納 ; Tripitaka Koreana ; Jeongan’s(鄭晏) ; Bunsadaejangdogam(分司大藏都監) ; Hadong(河東) ; Yangkyeongsa Temple(陽慶寺) ; engraving ; donated.
KCI등재
학술저널
93-125(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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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an’s(鄭晏) family clan is in Hadong(河東). Jeongan, his father and grandfather served as the high-ranking bureaucrat. Jeongan had started with Jinjumok(晉州牧) local official after take a past examination, and was appointed Kukjagam Chea...
Jeongan’s(鄭晏) family clan is in Hadong(河東). Jeongan, his father and grandfather served as the high-ranking bureaucrat. Jeongan had started with Jinjumok(晉州牧) local official after take a past examination, and was appointed Kukjagam Cheaju(國子監 祭酒), Chamjijeongsa(參知政事) and so on.
He spend a long time in Hadong and Namhae(南海). He stayed 24 years in Hadong as Kukjagam Cheaju after he had resigned a local official from January, 4 years of King Gojong’s reign, to April, 28 years of King Gojong’s reign. A few years later, he moved to Namhae to avoid Choiei’s(崔怡) tyranny from 30 years of King Gojong’s reign to 38 years of King Gojong’s reign when Jeongan was reappointed.
Meanwhile, the amount of engraving Tripitaka Koreana(高麗大藏經) increased rapidly 30 years of King Gojong. Improvement of engraving skill and a indirect battle between Mongol is considered with main cause. However, There are a few facts that engraved scriptures in Bunsadaejangdogam(分司大藏都監). Bunsadaejangdogam normally supplied the various goods. But it engraved 10% of the whole scriptures during 6 years since 30 years of King Gojong’s reign.
It is assumed that such changing and Jeongan’s task as his official member had a interconnection. First, Jeongan went down to Namhae in 30 years of King Gojong’s. Second, He write the epilogue of ‘Seonmoonyeomsongjip(禪門拈頌集)’ published by Manjong(萬宗). Third, He engraved the 5 types of scriptures such as ‘Kumkangsammaekyeongron(金剛三昧經論)’ between 31~33 years of King Gojong’s reign. Forth, He started the engraving at Busadaejangdogam in 31 years of King Gojong’s reign. Finally, he donated a portion of his property. In total, Jeongan must be involved deeply the delivery of materials in engraving Tripitaka Koreana.
He worked mostly in Yangkyeongsa Temple(陽慶寺) and Kangyeolam Temple(江月庵) located in Hadong. He leads the local opinion with Hyesim(慧諶), so the influence must be had numerous. Hadong is near the Jinju and Namhae where Bunsadaejangdogam was there. Not only this, engraved zone such as Suseunsa Temple(修禪社) and Dansoksa Temple(斷俗寺) was near. Consequently, it is looked that Jeongan took charge of link between Jinju and Namhae’s Bunsadaejangdogam.
국문 초록 (Abstract)
鄭晏의 본관은 河東이다. 조부 정세유, 부친 정숙첨에 이어 3대에 걸쳐 고위 관료를 배출한 집안 출신이다. 희종대 과거 급제 이후 晉州牧 지방관을 시작으로 國子監 祭酒, 參知政事 등을 두...
鄭晏의 본관은 河東이다. 조부 정세유, 부친 정숙첨에 이어 3대에 걸쳐 고위 관료를 배출한 집안 출신이다. 희종대 과거 급제 이후 晉州牧 지방관을 시작으로 國子監 祭酒, 參知政事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최항에 의해 정치 일선에 복귀하였다가 백령도에 유배된 직후 살해되었다. 그가 고향인 하동과 남해에 머문 시기는 지방관을 그만둔 고종 4년 1월경부터 국자감 좨주로 임명된 고종 28년 4월까지 24년간, 그리고 최이의 전횡을 피해 낙향한 고종 30년 직전부터 최항에 의해 다시 발탁된 고종 38년 1월까지 약 8여 년간이다.
『고려대장경』 각성사업은 고종 30년부터 판각량이 급증하였다. 판각 능력의 향상에 따른 기술적 발전과 몽고군과 직접적인 전투가 없었던 것도 증가 요인이지만, 분사도감에서 경판을 판각한 사실도 중요하다. 분사도감은 애초 인적 자원과 물자 조달에 업무의 중점을 두었으나, 고종 30년부터 6년간 전체의 약 10%를 판각하였다. 이러한 변화와 정안의 활동을 종합적으로 비교해 보았을 때 상호 연관성이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정안은 하동과 남해에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혜심과 일연, 만종 등 불교계 인사 및 지역 토착세력 등과 교류하여 人的 관계망을 구축하였다. 그가 관직생활 도중 남해로 낙향한 시점, 혜심의 『선문염송집』 발문을 작성한 시점과 맞물려 분사도감에서도 경판을 판각하였다. 또 분사도감에서 판각 중일 때 정안에 의해 『금강반야바라밀경』 등 불교전적이 간행되었다.
하동은 분사도감이 존치한 진주와 남해와 맞닿아 있고, 조성 공간으로 활용된 수선사와 단속사와 인접해 있다. 정안이 구축한 인적 관계망과 하동의 지리적 여건을 종합해 보면 그는 대장도감이 있었던 江華京과 원거리에 있던 진주와 남해의 분사도감을 이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그는 하동과 남해라는 경상도 서부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였고, 혜심 및 수선사 등과의 교류를 통해 전라도 동부지역에 대한 여러 사정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각 지역의 다양한 자원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토착 및 경제적 기반과 활동 양상을 고려해 볼 때 私財 施納은 물론이고, 각성사업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조성에 필요한 각수와 물자 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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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형 ‘중간시민’에서 동화형 ‘유사시민’으로 - 화교화인의 변모와 ‘동아시아 시민’의 형성(1) -
1920∼30년대 출판경영인 崔演澤의 야담집 기획과 출간
日韓両国の八萬大藏經硏究とその成果 - 鄭晏と分司大藏都監を中心として -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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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2019-05-02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Journal of Seokdang Academy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5-03-25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Jornal of Seokdang Academy |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07-01-02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석당전통문화연구원 -> 석당학술원영문명 : Seokdang Academic Research Institute of Traditional Culture Dong-A University -> Seokdang Academy |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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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2 | 0.62 | 0.5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51 | 0.46 | 1.395 | 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