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 학계 고대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접점은 단연 낙랑군의 위치이다. 이 낙랑군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그 당시의 역사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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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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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군현 ; 낙랑 ; 패수 ; 역도원 ; 평양성 ; 정약용 ; 기자조선 ; Hangunhyeon ; Lelang ; Paesu ; Li Daoyuan ; Pyeongyangseong ; Jeong Yakyong ; Giza Joseon
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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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229-298(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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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학계 고대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접점은 단연 낙랑군의 위치이다. 이 낙랑군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그 당시의 역사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매우...
동북아시아 학계 고대사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접점은 단연 낙랑군의 위치이다. 이 낙랑군의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그 당시의 역사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매우 첨예하게 대립한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이런 기본입장에서 한군현 설치 당시부터 시작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군현 관련 문헌을 검토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게 되었다.
사료를 근거로 하여 한군현 관련 문제를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한군현의 설치 초기에는 당시 패수가 있었던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인 하북성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가 차이나계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한군현 역시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패수의 위치가 바뀌면서 한군현의 위치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현재 난하는 고대의 패수였고 북위시기에 이 패수라는 강 이름이 없어졌는데 6세기경 당시 지리학자였던 북위의 역도원이 고구려 평양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는 말을 듣고 이 패수를 근거로 하여 낙랑군을 현재 중국 요녕성 요양지역으로 이동시켰다. 이때 낙랑군과 평양의 등치관계가 설정되었으며, 그 후 명나라시기에 현재 한반도에 평양이라는 지명이 보편화되면서 낙랑군도 이 지역으로 옮겨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런 변화는 원래 한군현이 설치된 지역에서 시작하여 강 이름과 지명을 따라 오늘날 한반도 평양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증명하듯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 어디에도 한군현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된다. 그러므로 현재 한반도에 한군현이 있었다는 것은 14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변화과정을 알려주는 사료들은 매우 많은데 그동안 학계에서 이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학계에서 현재 한반도 평양지역에 한군현이 있었다는 단선적인 주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의견들은 1920년대 단선적으로 한반도로 고정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학계에서 더욱더 치밀한 보완 연구를 통하여 한군현을 제자리에 놓고 한국 고대사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rimary hotspot in ancient history research of Northeastern Asian academia is the location of Lelang Commandery. This is due to the differentiation in historic interpretation depending on the location of it. It is very natural to see heated discus...
The primary hotspot in ancient history research of Northeastern Asian academia is the location of Lelang Commandery. This is due to the differentiation in historic interpretation depending on the location of it. It is very natural to see heated discussions about this problem. After many analysis on literatures and documents related to four commanderies of Han from its birth to modern era, author have earned the following results. If we organize the problems related to four commanderies of Han based on artifacts, we can find out that at its power widening by growth of Chinese region powers from its previous location in Hebei Sheng of northeast China. Especially on relocation of Paesu, we could also see the change in location of four commanderies of Han. Current Luán he was ancient Paesu, and on time of Northern Wei, the river name Paesu disappeared. By 6 century, a geographer named Li Daoyuan heard that Pyeongyangseong of Goguryeo was north of Paesu and shifted Lelanggun to current China Liáoníng Sheng Liaoyang region, and this is when the equal state of Lelanggun and Pyeongyang was set, and afterwards, the
region name of Pyeongyang in Korean Peninsula became commonly known to people, and this is why Lelanggun moved here as well. This difference started from original location of four commanderies of Han, following the names of rivers and regions, all the way down to current Pyeongyang of Korean Peninsula. No records of four commanderies of Han in Korean Peninsula in the book of 『Samguksagi』 proves it. So saying that four commanderies of Han being in Korean Peninsula starts after 14th century. There are plenty of artifacts telling these process of change, but the history academia did not take close observation on them. There must have been other calls than this simple insistence of four commanderies of Han being in Pyeongyang of Korean Peninsula.
However, these various opinions were standardized into Korean Peninsula on 1920s, and is continued until today. Therefore, more elaborate research will have to be done by history academia to put four commanderies of Han in its original location and to study ancient history of Korea.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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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太平寰宇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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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大明一統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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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史記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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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王綿厚, "中國東北與東北亞古代交通史" 遼寧人民出版社 2016
50 "三國遺事"
51 "三國史記"
광복 이후 초·중등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사(檀君朝鮮史)' 분야 개정 과정 연구
「부도지(符都誌)」의 콘텐츠에 관한 소고(小考) - "한"과의 중첩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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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2010-05-04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仙道文化 제6집 -> 仙道文化 |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2007-04-13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선도문화연구원 -> 국학연구원영문명 : Korean Sundo Culture Institute -> kukhak Institute | |
2006-11-13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for Korea Sundo & Culture -> Korean Sundo Culture Institute |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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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6 | 0.36 | 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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