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17~18세기 퇴계학파의 율곡학파에 대한 대응의식과 사상사적 지평 = The Horizon of the Four-Seven Theories of Teogye School in 17th and 18th Centuries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5112159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17~18세기의 퇴계학파는 노론의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압박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에 학파적인 결속을 강화하고 확장해야 하는 시기로 인식하였다. 노론은 퇴계의 호발설을 중심으로 퇴계학...

      17~18세기의 퇴계학파는 노론의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압박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에 학파적인 결속을 강화하고 확장해야 하는 시기로 인식하였다. 노론은 퇴계의 호발설을 중심으로 퇴계학설에 대한 비판을 본격화했으며, 영남남인을 회유하는 등 정치적인 입장에서 남인의 노론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시대 퇴계학파의 거유인 성호와 대산은 근기남인과 영남남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당대남인의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퇴계학문을 수호하고 퇴계학파를 결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율곡학과 퇴계학의 대결구도에서 가장 중심이되었던 것이 사단칠정론에 대한 시각차였기 때문에, 성호와 대산은 모두 퇴계학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단칠론에 대한 학설을 수립해나간다.
      성호는 처음에 사칠신편에서 리발일도설을 주장하였지만, 이는 사단이 형기의 매개 없이 발생하는 문제를 갖게 되었기에 다시 숙고의 과정을 거쳐 리발기수일도설로 자신의 학설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바로 식산과 하빈이다. 식산은 우담과 갈암 등 영남유학자들의 학문과 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으며, 하빈은 성호가 리발기승일도설에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성호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해석에서 퇴계학문의 올바른 이해와 함께퇴계학파의 일원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대산은 밀암에게 친히 「태극도설」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기에 그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분개설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대산은 우담의 이론적영향 아래 혼륜설에 입각한 분개설을 주장한다. 그의 이론도 성호의 확정된 이론과 마찬가지로 리발기수일도설이라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리기론적 이해는 리주기자였다. 특히 칠포사
      를 수용하는 것은 율곡학파의 사단칠정론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대산이 사단칠정론을 대결이 아닌 포용의 기재로써 사용하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17th and 18th centuries the teogye school have been confronted by yulgok school’s academic and political pressure. The former is to criticize the hobal theory(互發說) which teogye purport and the latter is to cajole teogye school into ...

      During the 17th and 18th centuries the teogye school have been confronted by yulgok school’s academic and political pressure. The former is to criticize the hobal theory(互發說) which teogye purport and the latter is to cajole teogye school into agreeing to sympathize with noron’s opinion. Therefore teogye school thinking of
      its responsibilities which prepare to counterattack strengthen and extend its union.
      In this paper we will keep on eye on two leaders which one is daesan who is a leader of yeongnam groups and the other is sungho who is a leader of sungho groops. Although they have never met each other, they was sharing the awareness of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sense of responsibilities of academics and politics.
      Sungho synthesize to unify the variety of opinions on the four-seven theories into liju-kiji(理主氣地), while daesan put together to unify the variety of opinions on the four-seven theories into liju-kija.(理主氣資) By the way, their assertions like these goes up stream to the woodam’s liju-kibo.(理主氣補) Finally, the horizon of the four-seven theories of teogye school in 17th and 18th Centuries proceeds toward the same spot.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1. 서론
      • 2. 성호의 가학연원과 퇴계학파로의 지향
      • 3. 대산의 학통연원과 퇴계학파내의 결속
      • 4. 율곡학파에 대응한 퇴계학파의 사단칠정론의 지평
      • 5. 결론
      • 1. 서론
      • 2. 성호의 가학연원과 퇴계학파로의 지향
      • 3. 대산의 학통연원과 퇴계학파내의 결속
      • 4. 율곡학파에 대응한 퇴계학파의 사단칠정론의 지평
      • 5. 결론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