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2년(919) 기묘년
2년 봄 정월
○ 송악(松嶽)의 남쪽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어 삼성(三省) 삼성 문하성(門下省)․상서성(尙書省)․중서성(中書省)의 삼성을 말한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문하성과 중서성을 합쳐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中書門下省․都僉議府]라 하여, 이성이…
-
성종 즉위년(981)
8월
계미일. 왕이 위봉루(威鳳樓) 위봉루고려 초기의 정전인 천덕전(天德殿)의 정문이던 위봉문(威鳳門)에 있던 누각이다. 이곳은 국왕이 문무백관들의 조회와 하례를 받기도 하고, 과거급제자의 발표와 팔관회의 행사관람 및 부월(斧鉞)의 수여공간 등으로 활…
-
목종 12년(1009) 기유년
12년 봄 정월
경오일. 왕이 숭교사(崇敎寺)에 행차했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폭풍이 불어 일산의 자루가 부러졌다.
임신일. 왕이 상정전(詳政殿)으로 가 연등행사를 관람하고 있는데 대부(大府) 대부 고려시대 영송고(迎送庫)․국신고(國贐庫) 등과 함…
-
정종 즉위년(1034) 갑술년
겨울 10월
초하루 정사일. 태묘(太廟) 태묘 조선시대의 종묘(宗廟)와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역대 국왕들의 신주를 모셔두는 왕실의 사당이다. 고려 성종 때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된 이후 고려의 제도로 정착되었으며, 오묘제(五廟制)와 칠묘제가 실시되…
-
문종 즉위년(1046) 병술년
5월
기해일. 왕이, “돌아가신 왕께서 쓰시던 용상과 발받침[踏斗 답두 왕의 용상 앞에 놓인 발받침을 말한다. 한편 실내의 고정된 사다리나 도교의례에 있어 독특한 보법(步法) 등의 의미도 있다.]은 모두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또 금실과 은실로 수놓은 …
-
문종 2년(1048) 무자년
2년 봄 정월
초하루 경오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을해일. 동여진의 회화장군(懷化將軍) 구라마리불(仇羅麻里弗) 등 40명이 와서 명마를 바치므로 차등을 두어 물품을 내려주었다.
윤정월
초하루 경자일. 태묘(太廟…
-
문종 10년(1056) 병신년
10년 봄 정월
신미일. 황주(黃州)(지금의 황해북도 황주군)에 운석(隕石)이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갑술일. 동여진의 봉국장군(奉國將軍) 아가주(阿加主) 등 50명이 와서 준마 32필을 바쳤다.
2월
…
-
문종 13년(1059) 기해년
13년 봄 정월
초하루 정유일. 왕이 건덕전(乾德殿)에서 신년하례를 받은 후, 종친들과 재상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평장사(平章事)로 은퇴한 김정준(金廷俊)을 참석시켰으며, 밤이 늦어서야 잔치를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각각 궁중에서 기르는 말 한 필씩…
-
문종 14년(1060) 경자년
14년 봄 정월
초하루 신묘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계축일. 문덕전(文德殿)에서 이레 동안 천제석도량(天帝釋道場) 천제석도량 제석천도량(帝釋天道場)․제석도량(帝釋道場)이라고도 하며, 천재지변의 극복이나 외적격퇴를 기원하면서 제석천(帝釋天…
-
문종 25년(1071) 신해년
25년 봄 정월
초하루 정해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기해일. 김행경(金行瓊)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로, 최유부(崔有孚)를 상서우복야로, 홍덕위(洪德威)를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정유산(鄭惟産)을 한림학사(翰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