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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2020일본문화연구본 연구는 일본영상물, 〈음양사(陰陽師)2〉(2003) 〈올빼미의 성(梟の城)〉(2001) 〈고GO〉 (2001)를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한일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교육텍스트로서의 활용이 가능한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1998년 10월 20일에 이루어진 제1차 일본 대중문화개방으로 일본관련 영상물은 끊임없이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그러한 영상물은 교육현장에서 일본어를 습득하는데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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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식2019日本硏究The Chapter of Joseon in the 『Historical Research on Japanese’ Overseas Activities』 compil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as a ‘subsidiary tas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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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性和2017일본연구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examine Korea-Japan relations in the an-cient through the Kibi clan of the articles related to the Korean 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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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덕2016This paper is to examine Sasojeol which written by Lee Deok-moo (1741~1793). The book is based on a critical mind which emphasizes the aware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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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수2016한일관계사연구고대일본의 신라적시관과 복속사상은 표리일체를 이루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념이었다. 신라적시관의 생성은 왜왕권과 친연관계에 있던 백제의 멸망이었다. 천황제 율령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국이 추구한 대외적 이념으로서 신라를 능가하는 國制의 편성이었다. 이를 위해 대보율령을 제정하였으며 신라를 번국으로 하는 법적 조문을 명기하고, 복속사관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신공황후의 신라정벌담을 창출하였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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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야마 미나코2016한국기독교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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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봉2015한일관계사연구원중거(1719-1790)는 영?정조대를 살았던 인물로서 관료로서 크게 현달하지도 않았고, 진보적인 개혁사상을 제시한 실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연암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연암학파’의 일원으로서 북학파 실학자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그룹 내에서 존장(尊長)으로 소장파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1763년(영조 39)통신사행에 서기(書記)로 수행하게 되었다. 사행 중 일본인 문사들과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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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태2015현대문학의 연구``객관적``인 일본연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일본연구가 그 형식에서 독립적인 학문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객관성``이라는 것은 그 내용과 관계없이 일본연구의 앞머리에 붙는 수사(레토릭)로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열쇳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객관성``은 이른바 ``가치자유적``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일본론에서 나타났던 가치목적적 전제에 대한 기계적인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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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석2014한일관계사연구본고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약 40년에 걸쳐 일본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메이지정부의 중심인물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조선 인식과 정책을 막말부터 청일전쟁 이후까지의 시기에 초점을 맞추어 해명하려고 하였다. 이토는 ‘존황양이’ 론자인 요시다 쇼인의 문하에서 대외팽창론의 영향을 받았고 실제 양이운동에도 가담했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정한론’과 타이완 침공 등 대외문제에서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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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2013한일관계사연구『日本書紀』에 보이는 百濟의 ‘君’號는 키시(キシ)와 키미(キミ)2가지의 훈독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훈독의 차이는 백제의 ‘君’號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 키시(キシ)로 훈독되는 ‘君’號는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였던 인물들에게 주어진 칭호였다. 초기에는 왕이나 왕족의 인물들에게서만 ‘君’號가 보였으나 점차 귀족이나 가야, 왜의 인물에게서도 백제의 ‘君’號가 사용되었다. 무령왕대에 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