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재집 목록
勿齋集
물재집
勿齋集
勿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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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舜孝
손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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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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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조선 시대 물재(勿齋) 손순효(孫舜孝, 1427~1497)의 문집이다. 저자의 시문은 초고 형태로 가장되다가, 1726년에 후손 손경기(孫敬基), 손항(孫沆)이 주도하여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1874년에 후손 손치범(孫致範), 손치봉(孫致鳳), 손치겸(孫致謙) 등이 간행을 위한 작업을 준비하여, 1876년에 후손 손석래(孫錫來)가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2권, 부록 합 2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두에 1726년에 정호(鄭澔)가 지은 서(序)가 있다. 권1은 사부(詞賦), 시(詩), 잡저이고 권2는 상소이며, 부록은 신도비명, 어찰(御札), 증시, 유사, 습유이다. 신도비명은 이창신(李昌臣)이 지었고, 어찰은 1492년에 성종이 저자에게 내린 것인데, 당시 문형인 홍귀달(洪貴達)의 발(跋)이 첨가되어 있다. 증시는 〈정칠휴정(呈七休亭)〉이라는 시제로 홍귀달, 이창신, 남곤이 지은 것이다. 유사는 《용재총화(慵齋叢話)》, 《오산설림(五山說林)》, 《북저야사(北渚野史)》에서 저자에 관한 일화를 뽑아 수록한 것이다. 습유는 예조 참의로 치사하는 임수겸(林守謙)에게 지어 준 시이다. 권미에 1726년에 이세환(李世瑍)이 지은 발이 있다.
상세해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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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勿齋 孫舜孝(1427 : 世宗9 ~ 1497 : 燕山君3)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後孫 沆이 蒐集ㆍ編次한 詩文을 李世?의 校正과 再編을 거쳐 1729年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2卷 2冊으로 總 97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 : D1-A361)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0.8×16.7(cm)이다.
○ 本 影印底本은 序의 第1板은 狀態가 不良하고, 卷1의 第15板은 落張이므로 同一本인 韓國學中央硏究院 藏書閣藏本(圖書番號 : D3B-1260)으로 代替ㆍ補充하였으며, 卷1의 第3板은 卷次가 漏落되어 있고, 卷2의 第6板은 卷次가 「1」로 誤記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梁鴻烈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관련 문집
문집명 | 저자 | 간행년도 | 저작시대 |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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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백정집(虛白亭集) | 홍귀달(洪貴達) | 1843 | 조선시대 전기 | 한국문집총간DB |
장암집(丈巖集) | 정호(鄭澔) | 1756 | 조선시대 후기 | 한국문집총간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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