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집 목록
寤齋集
오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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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正萬
조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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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조선 시대 오재(寤齋) 조정만(趙正萬, 1656~1739)의 문집이다. 본집은 장손 덕수(德洙)가 저자의 자편고를 바탕으로 편차한 고본을, 현손 기진(基晉)과 5대손 면호(冕鎬)가 1877년 교수ㆍ재편한 괘인사본으로 그 전사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본집은 4권 4책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별로 목록이 있다. 권1~2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자연 경물을 대상으로 지은 시, 함께 시사를 열었던 김창흡(金昌翕), 김창업(金昌業), 김시보(金時保), 김창집(金昌集) 등과 수창한 시가 많다. 권3은 소(疏), 헌의(獻議), 전장, 서(書), 행장, 비명 등이다. 그중에서 〈우재송문정공변무소(尤齋宋文正公辨誣疏)〉는 1684년에 성균관 유생의 소두로서 윤증의 무패한 형상을 극론하고 송시열을 변송한 것이며, 그 외에 충청도 관찰사, 공조 참의, 공조 판서 등의 관직을 사직하는 소가 있다. 권4는 제발, 상량문, 잡저, 부록이다. 권말에 이이명(李頤命)이 1708년에, 이희조(李喜朝)가 1712년에 시고에 붙인 제(題)와 이의현(李宜顯)이 1726년에 지은 발, 현손 기진이 1877년에 지은 지(識)가 있다.
상세해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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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寤齋 趙正萬(1656:孝宗7 ~ 1739:英祖15)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長孫 德洙가 著者의 自編稿를 바탕으로 編次한 稿本을, 玄孫 基晉과 5代孫 冕鎬가 1877年 校讎ㆍ再編한 罫印寫本으로 그 轉寫經緯는 分明하지 않다.
○ 分量은 4卷 4册으로 總 300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國立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한46-가1882)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2.4×15.6(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一部 校正簽紙의 內容은 匡郭 左右에 移置하고 簽紙의 原位置에 「*」로 標示하였다.
○ 本集의 標點者는 吳圭根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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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명 | 저자 | 간행년도 | 저작시대 |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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