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암집 목록
東巖集
동암집
東巖集
東巖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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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長源
유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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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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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조선 시대 동암(東巖) 유장원(柳長源, 1724~1796)의 문집이다. 본집은 손자 약문(約文)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07년 경 황산사에서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되어 있는데 서발은 없고 권두에 목록이 실려 있다. 권1의 후반부에서 권8까지는 편지로 권1의 후반부~2가 스승과 장자(長者)에게 보낸 것이고, 권3~5의 편지가 동문들에게 보낸 것이며, 권6~7은 문인ㆍ자제들이고, 권8은 일가에게 보낸 글로 편차되어 있다. 권10~11은 잡저(雜著)로, 〈의례고견〉은 《가례(家禮)》, 《의례(儀禮)》 뿐만 아니라 윤증(尹拯)이나 김장생(金長生), 이현일(李玄逸)의 예설(禮說)을 인용하여 상례(喪禮)에서의 여러 가지 의문점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총 31조항이 실려 있다. 〈권처사전(權處士傳)〉은 무인이지만 평생 효도를 실천한 권두징(權斗徵)에 대한 전이다. 〈망녀원사경개(亡女寃死梗槪)〉는 김시길(金始吉)에게 시집간 딸이 남편이 죽은 뒤 17년 후 유복자마저 죽자 자결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권14는 부록(附錄)이다. 남한조의 행장과 이우(李㙖)의 묘갈명(墓碣銘)이 실려 있다.
상세해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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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東巖 柳長源(1724 : 景宗 4 ~ 1796 : 正祖 20)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孫 約文 등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1807년 경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4卷 7冊으로 總 54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成均館大學校 尊經閣 藏本(圖書番號 : D3B-2566)으로서 半葉은 10行 21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6×16.9(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12의 제14板은 卷次가「10」으로 誤記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吳圭根이고, 監修者는 梁鴻烈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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