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곡집 목록
晩谷集
만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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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述道
조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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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조선 시대 만곡(晩谷) 조술도(趙述道, 1729~1803)의 문집이다. 종자 거신(居信)이 수습 정리하여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의 교수(校讎)와 서문을 받았으나 정종로, 신체인(申體仁), 거신의 제문 등 부록문자는 수록되지 않은 채, 1821년에 17권 9책의 목판으로 간행된 것이다. 본집은 17권 9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에 정종로(鄭宗魯)가 지은 서문과 총목록이 있다. 권3~7은 서(書)이다. 서는 인물별로 묶어 연도순으로 편차하였다.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1785년 봄 서울에 올라갔다가 서학(西學)이 세도의 근심거리가 된 것을 알고 〈운교문답(雲橋問答)〉을 지은 뒤에 쓴 것이 있다. 권8은 잡저이다. 이 중에는 서울에서 있었던 혹자와의 문답 형식을 통해 유학(儒學)과 천주학(天主學)을 비교 비판한 〈운교문답(雲橋問答)〉, 유학과 불학(佛學)을 비교 변론한 〈유석분합변(儒釋分合辨)〉, ‘인심겸출입유선악(人心兼出入有善惡)’, ‘인심상각(人心常覺)’, ‘심불가이전언기(心不可以專言氣)’, ‘이불가이유무론(理不可以有無論)’, ‘정자방개설(程子放開說)’, ‘유정유일(惟精惟一)’ 등에 대해 논한 〈재거수록(齋居隨錄)〉 등이다.
상세해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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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晩谷 趙述道(1729:英祖5~1803:純祖3)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從子 居信이 鄭宗魯의 校讎를 받은 稿本을,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으로 그 刊行經緯는 分明하지 않다.
○ 分量은 17卷 9册으로 總 65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만송D1-A1141)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7×16.8(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8의 第8板은 狀態가 不良하여 同一本인 國立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古3648-72-78)으로 代替하였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관련 문집
문집명 | 저자 | 간행년도 | 저작시대 |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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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재집(立齋集) | 정종로(鄭宗魯) | 1835 | 조선시대 후기 | 한국문집총간DB |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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