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암집 목록
訥菴集
눌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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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旨瑞
박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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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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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조선 시대 눌암(訥菴) 박지서(朴旨瑞, 1754~1819)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사순(士淳)이 가장을 지어 유적을 정리하면서, 유문을 수집하고 편차하여 8책으로 정고한 것을, 증손 기형(夔衡), 일형(一衡) 등이 다시 교수 산정하고, 사장(事狀)과 묘갈명(墓碣銘) 등을 증보하여 4책으로 재편한 후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서문(序文)을 받아 1908년에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8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곽종석이 1908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이 있다. 권1은 시(詩)로, 〈독퇴계서초서(讀退溪書抄序)〉는 일본인 처사(處士) 촌칠종장(村七宗章)이 이황의 문집을 초집한 10책에 그의 제자가 지은 서를 읽고, 바른 의리를 얻는 데 왜인이라 하여 다르지 않다며 기쁜 마음에 읊은 것이다. 권4는 잡저, 서(序), 기(記), 발(跋)이다. 잡저 가운데 〈산가설변(山家說辨)〉은 산천의 길흉에 매달리는 풍수의 폐단을 열거하면서 발복(發福)을 바라고 묘지를 고르기에 앞서 ‘성효(誠孝)’가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권미에 족증손 주형(周衡)이 1908년에 지은 후서(後序)와 증손 일형이 1908년에 지은 발이 있다.
상세해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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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訥菴 朴旨瑞(1754:英祖30~1819:純祖19)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子 士淳이 蒐集ㆍ編次한 稿本을, 著者의 曾孫 一衡이 刪定ㆍ校讎하여 1908年 活字로 印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8卷 4册으로 總 392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延世大學校 學術情報院藏本(圖書番號:811.98/박천건/눌-목)으로서 半葉은 10行 22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3.7×16.7(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6의 第40板은 板次가 「四十四」로 誤記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梁鴻烈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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