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와집 목록

訥窩集
눌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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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若烈
이약렬
1934
  • 한국문집총간(속) 제10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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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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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 조선 시대 눌와(訥窩) 이약열(李若烈, 1765~1836)의 문집이다. 1896년 저자의 족증손 도복(道復)이 산일되고 남은 저자의 자편고(自編稿)를 바탕으로 약간 편을 선정하였는데, 저자의 방예 정수(定洙)가 도복이 선정한 것이 너무 소략하다고 생각되어 시문과 부록문자를 증보하고 이교우(李敎宇)의 정정을 거쳐 7권 4책으로 재편하여, 종중(宗中)과 사림의 협조를 받아 1934년 목활자로 인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족증손 도복이 1896년에 지은 서(序)와 목록이 있다. 권2는 시(詩)이다. 〈문가산쉬우적입근감탄유부(聞嘉山倅遇賊立慬感歎有賦)〉는 가산 군수 정시(鄭蓍)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당하여 온 가족이 대항하다가, 아버지는 죽고 그는 아우의 은닉으로 죽음을 면한 사실을 읊은 것이다. 〈자적출관서조정견사호모……(自賊出關西朝廷遣使號募……)〉는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청천강 이남과 이북 41주에서 근왕병(勤王兵)을 모집하였으나, 의주(義州)의 김견신(金見臣)과 허항(許伉) 등만이 적을 섬멸하여 공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권말에는 1934년 방예 정수가 쓴 발이 있다.

    상세해제 보기


  • ○ 本集은 訥窩 李若烈(1765:英祖41~1836:憲宗2)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族曾孫 道復이 散佚되고 남은 著者의 自編稿를 바탕으로 選定한 稿本에, 著者의 傍裔 定洙가 詩文과 附錄文字를 增補ㆍ再編하여 李敎宇의 訂整을 거쳐 宗中과 士林의 協助를 받아 1934年 活字로 印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7卷 4册으로 總 267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D1-A852)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2×17.4(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3의 第21ㆍ27板은 卷次가 漏落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梁鴻烈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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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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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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