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와집 목록

龍耳窩集
용이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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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𡋃
권뢰
1909
  • 한국문집총간(속) 제12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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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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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 조선 시대 용이와(龍耳窩) 권뢰(權뢰(土+耒), 1800~1873)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손자 용한(龍漢), 용한(用漢)과 종질 태두(泰斗) 등은 유문을 수집 등사하여 정리하고, 이후 저자의 증손 오영(五永) 등이 별집과 부록을 추가하고 김도화(金道和)로부터 서문을 받아 1909년경 목활자로 문집을 인행하였다. 본집은 원집 9권, 속편 1권 합 5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1909년 김도화가 쓴 서와 목록이 있다. 권3의 전반부는 상언(上言), 장(狀), 서(書)이다. 상언은 6대조 권용현, 증조 정래(正來), 조부 중엄(重儼) 등 삼세(三世)의 효를 포증하여 일문지병정(一門之幷旌)이라는 특은을 베풀어 줄 것을 청하는 것이다. 장은 선조조의 충신이자 효자인 정곽(鄭廓) 등에 대한 정읍(呈邑)의 내용이다. 권7~8은 별집으로 5편의 일기류이다. 1829년과 1837년의 〈경행일록(京行日錄)〉 및 〈동정일기(東征日記)〉는 6대조 권용현의 지효(至孝)를 기릴 정려를 청하기 위해 서울로 발행한 여정과 회계서원의 기문과 묘갈명, 행장 등을 받는 경위를 자세하게 일기식으로 쓴 것이다. 말미에 증손 오영이 문집 간행의 배경과 경과를 적은 발이 있다.

    상세해제 보기


  • ○ 本集은 龍耳窩 權 𡋃(1800:正祖24~1873:高宗10)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孫 龍漢ㆍ用漢과 從姪 泰斗가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한 稿本을, 著者의 曾孫 五永이 1909年頃 活字로 印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原集 9卷, 續編 1卷 合 5册으로 總 307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延世大學校 學術情報院藏本(圖書番號:811.98/권뢰/용)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0.8×16.8(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原集 卷7의 第28板은 板次가 「三十八」로 誤記되어 있고, 續編 卷1의 第6板은 板次가 漏落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梁鴻烈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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