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집 목록

臨齋集
임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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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贊奎
서찬규
1909
  • 한국문집총간(속) 제139집
  • -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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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 조선 시대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1825~1905)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문인 이화상(李華祥)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910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이후 권수(卷首)에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서문을 수록하고, 부록에 손자 갑수(甲洙)의 가장(家狀)을 추가한 목판본은 1931년에 신현구(申鉉求) 등이 달성군 화원면 성산동의 임연당(臨淵堂)에서 간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집은 17권 7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10~11은 잡저이다. 〈교성보의(嶠省堡議)〉는 1875년 일본의 침략에 대한 방어책을 논한 것으로 자수자강(自守自强)과 산성(山城)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만필(謾筆)〉은 천지조화를 이루는 이기론(理氣論)을 논한 것으로 이(理)는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기(氣) 속에 존재하여 기의 주(主)가 된다고 설명하고 서교(西敎)를 비판하고 위정벽이(衛正闢異)가 급선무임을 역설하였다. 〈잡기(雜記)〉는 군자의 학문, 입지, 용심 등 여러 가지 학문,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글이다. 권미에 문인 이화상가 1909년에 지은 발(跋)이 있다.

    상세해제 보기


  • ○ 本集은 臨齋 徐贊奎(1825:純祖25~1905:高宗42)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門人 李華祥 등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1909年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7卷 7册으로 總 49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延世大學校 學術情報院藏本(圖書番號:811.98/서찬규/임)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19.8×15.1(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13의 卷尾題는 卷次가 「十二」로, 卷16의 第20ㆍ24ㆍ25ㆍ27ㆍ28板은 板次가 각각 「二十一」ㆍ「二十五」ㆍ「二十六」ㆍ「二十八」ㆍ「二十九」로 誤記되어 있고, 卷16은 板次 「二十七」이 漏落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梁鴻烈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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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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