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계유고 목록
大溪遺稿
대계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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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在英
황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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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일러두기
조선 시대 대계(大溪) 황재영(黃在英, 1835~1885)의 문집이다. 저자 사후 후손들이 유문(遺文) 약간 편을 수집하여 4권으로 정리하고, 신헌구(申獻求)의 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신헌구가 지은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2~4는 서(書)이다. 1884년 성두호(成斗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향음주례(鄕飮酒禮)는 고례(古禮)이나 지금에 행할 수 있을 것이니 한번 시행해보려 한다며 조언을 구하였다. 1877년에 김형모(金瀅模)에게 준 편지에는 일본의 유학자 태재순(太宰純)의 《논어고훈외전(論語古訓外傳)》을 보았는데 박학 강구한 것은 볼만하나 천지간의 괴려한 물건이라고 평하였다. 권5는 서(序), 기(記), 발(跋), 잡저(雜著)가 수록되어 있다. 기(記)는 김헌락(金獻洛)이 백낙천(白樂天)의 십용시(十慵詩)에 감화되어 세거하던 안동의 용암(龍巖)을 용암(慵庵)이라 바꾼 배경과 의미를 기록한 〈용암기(慵庵記)〉, 목치중(睦致中)의 처로 혼인한 다음날 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다 남편을 따라 죽은 절부(節夫) 엄씨(嚴氏)의 정려기 등이다.
상세해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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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大溪 黃在英(1835:憲宗1~1885:高宗22)의 文集이다.
○ 本集은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申獻求의 序文을 받아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으로 그 刊行經緯는 分明하지 않다.
○ 分量은 7卷 4册으로 總 291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奎3666)으로서 半葉은 10行 19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19.7×16.8(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1目錄의 第22板은 板次가 「二十一」로 誤記되어 있고, 卷1의 第16板은 卷次가 漏落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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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명 | 저자 | 간행년도 | 저작시대 |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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