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이 호택의 관소에 거둥하다.
상이 이어 호의【호택(胡沢)】 관소에 거둥하였다.【호택은 전일 참장으로 있을 때 심유경(沈惟敬)과 강화를 강력히 주장한 자이다.】주례를 행한 뒤에 호택이 말하기를,
“제가 성안에 들어온 뒤에 예의상 마땅히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현재 효복(孝服...
-
왜가 글을 보내와 억류하고 있는 사신의 송환을 요구하다.
6535. 왜가 글을 보내와 억류하고 있는 사신의 송환을 요구하다.
왜의 서계는 다음과 같다.
“일본국 풍신조신(豊臣調信)은 삼가 조선국 부산 영공대인족하(令公大人足下)에게【이때 이종성(李宗...
-
심유경이 왜차인 소서비와 함께 왜영에 도로 들어가다.
심유경(沈惟敬)이 왜차인 소서비(小西飛)와 더불어 왜영에 도로 들어갔다.
이에 앞서 허욱(許頊)이 경사에 가서 주문을 바치니 병부에서 크게 기뻐하여 왜가 성심으로 납관한다고 여기고서 소서비의 입경을 받아들이자고 주청하였다. 이어 그가 입경하니 세 가...
-
봉왜조사 이종성과 양방형이 경성에 들어오다.
봉왜조사(封倭詔使) 이종성(李宗誠)과 양방형(楊邦亨)이 경성에 들어왔다.
명나라 조정에서 처음에는 왜적의 납관을 허락하면서 왜인 하나도 유둔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전원이 모조리 철수해 돌아간 후에야 사신이 바야흐로 바다를 건너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
-
조사 이종성이 남하하다.
조사(詔使) 이종성(李宗誠)이 남하하였다. 이때 행장(行長)이 김해·동래의 길가에 주둔시킨 왜병을 철수하여 부산에 합진하고는 핑계하여 말하기를,
“조사를 영접하기 위하여 약간의 군사를 그대로 머물려 두었다.”
하였다.
-
봉왜정사 이종성이 도망쳐 돌아오다.
봉왜정사(封倭正使) 이종성(李宗誠)이 도망쳐 돌아왔다. 종성은 오랫동안 부산 왜인 병영에 머물면서 심유경(沈惟敬)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심유경이 돌아오지 않자 비로소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나온 어떤 왜인이 종성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관백은 사실상...
-
가등청정이 경주로 진병하려다가 중지하고 출병하지 않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이종성(李宗誠)이 나갔다는 보고를 듣고 대단히 기뻐하면서 ‘나는 실지로 그가 진짜 사신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했는데 지금 이러하니 반드시 그는 가짜 관원인 듯하다. 마땅히 경주로 진병해서 저들의 장수에게 그 연유를 물을 것이다.’ 하였는...
-
영남 별견어사 이종성이 동래 절영도의 어량의 절수을 하지 말 것을 청하다.
임금이 영남 별견어사(別遣御史) 이종성(李宗城)을 인견하였다. …… 이종성이 말하기를,
“동래 절영도(絶影島)는 바다 가운데에 있는 외딴 섬이고 왜관과 지척인 곳이므로 그 사이에 어량·해전이 혹 있더라도 다 좌수영·동래부의 각 진보에 소속된 것입니다...
-
조선 국왕이 왜정에 관한 일로 자문을 보내다.
조선 국왕이 왜정에 관한 일로 보낸 자문은 다음과 같다.
“본년 4월 16일에 요동 도지휘사사가 앞서의 일에 대해 보낸 자문을 접수하였습니다. 당직이 살피건대, 유격이 선유한 후부터 각진에 주둔한 왜병이 점차 철거하며 영책을 태워버린 것도 이미 9곳...
-
황신이 남호정에 대한 부천사의 유첩 ․ 품첩 ․ 별록 등을 치계하다.
접반사인 호군 황신(黃愼)이 치계하였다.
“본월 14일 부천사(副天使)의 차비역관(差備譯官) 박의검(朴義儉)이 글을 보내기를 ‘지난 9일 밀양(密陽)의 파발장(擺撥將) 송호한(宋好漢)과 진여덕(陳汝德)이 들어와 양노야(楊老爺)를 보자, 노야가 묻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