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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역 이담이 연경에 도착하여 유구국 사신과 이야기한 내용을 별단에 적다.
수역(首譯) 이담(李湛)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별단에 말하기를,
“지난 가을에 황제가 삼령(三嶺)에 이르러 사냥하다가 큰 호랑이를 보고 친히 조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근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늙어도 친히 사냥을 하는 것은 자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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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사람 7명이 풍랑을 만나 흥양현 삼도에 표류하였음을 아뢰다.
흥양현 삼도에 딴 나라배가 표류하여 왔다. 배의 길이는 60척이고 넓이는 16척 5치이며 높이는 6척인데, 소나무를 썼고, 쇠못을 쳤다. 돛대는 2개인데 앞의 것은 43척이고 뒤의 것은 62척으로써 전나무를 사용하였다. 배 안에는 쌀·조·콩·팥·보리·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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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 귀일포에 유구인 12명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였는데, 수로로 보내라고 하유하다.
제주목에 딴 나라 배가 표류하여 왔다. 그 배는 앞뒤가 높은데 앞에는 해를 그리고 뒤에는 달을 그렸으며, 양쪽 가장자리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난간 밖에는 태극을 그리고 그 왼편에 ‘해상안전순풍자재(海上安全順風自在)’ 라는 8자를 새겼으며, 돛대 위에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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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유구국인 세사람이 영암의 이진에 표류했다고 치계하다.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李書九)가 치계하기를,
“유구국에서 표류해 온 사람 세 명이 영암의 이진에 이르러 상륙하였습니다. 제주통사 이익청(李益靑)이 일찍이 제주에 표류해 왔던 유구 사람에게서 그 나라 말을 배웠으므로 익청을 시켜 실정을 물어보니,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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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이 유구국 표류자의 쇄환에 대해 아뢰다.
정원이, 홍문관이 ≪고려사(高麗史)≫에서 고찰한 유구국(琉球國)에서 표류한 사람들을 쇄환한 전례를【공양왕 3년에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이 그의 신하 옥지(玉之)를 보내 표문(表文)을 올려 신(臣)이라 일컫고 포로가 된 우리나라 사람 김윤후(金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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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의 중산왕이 사신을 보내 조회하다.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이 사신을 보내어 조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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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이 칭신하며 예물과 피로남녀 8인을 송환하다.
이 해에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신하로 일컫고 글을 받들어 통사(通事) 이선(李善) 등을 보내어 예물를 가져와서 바치고, 아울러 사로잡혔던 남녀 8명을 송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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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이 망명한 산남왕의 아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다.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서 전문(箋文)과 예물을 바치고, 피로되었던 남녀 12명을 돌려보내고서, 망명한 산남왕(山南王)의 아들 승찰도(承察度)를 돌려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 나라 세자 무녕(武寧)도 왕세자에게 글월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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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이 피로 ․ 표류인 9인과 글을 보내오다.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어 글을 바치고 방물을 바쳤으며, 잡혀 있던 사람과 바람을 만나 표류한 사람 9명을 돌려보냈다. 서신은 이러하였다.
“양의(兩儀)의 덕이 합하매 사시(四時)가 차서 있게 나뉘고, 여러 나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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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에 우거 중인 유구국 산남왕 온사도에게 의복과 양식을 주다.
유구국(琉球國)의 산남왕(山南王) 온사도(溫沙道)가 그 소속 15인을 거느리고 왔다. 사도(沙道)가 그 나라의 중산왕(中山王)에게 축출당하여 우리 나라의 진양(晉陽)에 와서 우거하고 있으므로, 국가에서 해마다 의식을 주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나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