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40년 (1607) 8月
- 정호관에게 성균관 사예의 관직을 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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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관(丁好寬)을 성균관 사예로 삼았다.【일본을 왕래한 공로에 보답한 것이다.】……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32년 (1599) 5월
- 사간원이 학문을 권장하는 일과 성균관에 대해서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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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2. 사간원이 학문을 권장하는 일과 성균관에 대해서 아뢰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옛날 나라를 중흥시킨 임금은 전쟁 중에서도 강론을 폐하지 않아 문교를 권장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병란을 겪은 뒤로 학교가 전부 폐지되어 교화하는 일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사세가 여기에 미칠 겨를이 없어서라고는 하지만 식자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흉적이 이미 물러갔으니, 바…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29년 (1596) 5월
- 성균관 진사 이욱 등이 성균관의 재건을 상소하니 의논하여 처치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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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 진사 이욱(李稶) 등이 상소하였다. 대략에,
“생각하건대, 신들은 어리석고 천하여 시의를 모르나, 구구한 일념은 도를 지키는 데에 있을 뿐이므로, 어려움을 무릅쓰고 금계를 범하여 드디어 말을 아뢰니 매우 오활한 듯합니다. 성명께서는 망령되게 글을 지은 죄를 관용하고 서둘러 일을 이루고자 하는 신들의 마음을 허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학궁의 일을 돌아보면, 급히 해야 하고 늦출 수 없으며 먼저 해…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31년 (1598) 10월
- 성균관에서 관학의 양성과 전답에 대해 건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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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이 아뢰기를,
“난리 이후 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 일체 폐지된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근년 이래로 거재유생 10명의 식량을 해조에서 비록 중국의 좁쌀로 지급하지만 모양이 말이 아니며, 국가의 예산에 있어서도 전혀 낭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경기 김포 지역 관학의 전답이 거의 100여 섬지기인데 다만 임진년 이후로 묵었다고 핑계하여 전혀 추심하지 않았으니 지금 마땅히 관원을 내려 보내 묵…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중종실록 › 중종 5년 (1510)
- 성균관의 생원 이경 등이 편의 10조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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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의 생원 이경(李敬) 등이 편의(便宜)10조를 올렸다.
“……
7. 백성의 고통을 여기소서. 그동안 생민의 도탄이 극도에 이르렀었는데 다행히 전하가 중흥하심에 힘입어 백성이 소생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정치를 겪은 나머지에 유리하고 병들고 파리한 자가 아직 힘입어 살아가지 못하는데, 또 왜구의 침략을 만나서 촌야가 동요되어 힘은 군수품 운수에 피로하고 재물은 군량 마련에 고갈되었으며, 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