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16년 (1583) 7월
- 성혼이 이이를 해명하는 상소를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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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혼(成渾)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건대, 신은 이름을 도둑질하고 주상을 속여 앉아서 높은 관작을 받았으니, 이미 소심에 위배되는 일이라서 내심 두려운 생각이 간절합니다. 감히 도하에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곧 구학(溝壑)구학(溝壑)구렁. 땅이 움쑥하게 팬 곳. 깊이 빠진 곳.으로 돌아가 죽으려던 차에 삼사가 전 병조판서 이이(李珥)를 탄핵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군·오국의 죄를 가하여 이이로 하여금 꼼짝 못하고 가게 만들었으니 잘…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26년 (1593) 3월
- 광릉참봉 이이첨이 광묘의 영정을 모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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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참봉(光陵參奉) 이이첨(李爾瞻)이 광묘의 영정을 모셔왔는데, 상이 백관을 거느리고 5리쯤 나와서 지영하였다. 변란이 나던 처음에 봉선사(奉先寺)의 중 삼행(三行)이 영정을 봉선전(奉先殿)에 묻어두었었는데, 뒤에 적에게 발굴되어 찢어버리려고 하는 것을 삼행이 애걸하여 보전해서 본사 은밀한 곳에 봉안하였다. 그 뒤 서울의 적이 더욱 독을 부려 날마다 광릉 근처에 불을 지르므로 이첨이 일이 다급함을 듣고 송경에서 곧장 적로를 범하여 가며 낮에는 …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태종실록 › 태종 17년 (1417)
- 정의현감 이이의 죄를 핵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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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에 명하여 정의현감(旌義縣監) 이이(李貽)의 죄를 핵실하였다. 지난 5월에 왜인 남녀 4명이 무기도 없이 작은 배를 타고 와서 투항하기를 구하였다. 이이가 군사를 거느리고 쏘아서 죽였는데, 사건을 아뢰니, 임금이 노하여 병조에 명하였다.
“비록 섬 오랑캐가 완악하고 다투기를 잘하나 무기가 없이 이르렀으니, 마땅히 사로 잡아서 그 까닭을 물어야 하겠는데, 급히 다 죽였으니 어찌 그리 포학한가? 사실을 캐어 물어서 아뢰라.”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16년 (1583) 4월
- 이이가 시폐를 들어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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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李珥)가 시폐를 들어 상소하니, 답하였다.
“내가 우연히 경이 몇 해 전에 올린 상소문을 보던 중 마침 경의 상소문이 올라왔는데 예나 이제나 정성스럽도다. 이 못난 임금을 잊지 않고 있는 경의 고충에 대하여 매우 가상히 여기는 바이다. 나라 일은 어진 대신이 당연히 맡아 해야 할 것이고, 남행이 대간이 되는 일에 있어서는 기왕의 후회스러움은 어차피 뒤쫓아 갈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번도 너무 후회스러운데 두 번 다시 잘못을 저지를 수…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30년 (1597) 10월
- 종묘와 사직을 봉환하는 예문에 대해 정언 이이첨이 이의를 제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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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 이이첨(李爾瞻)이【천성이 영특하고 기개가 있으며 간쟁하는 풍도가 있었다. 사간은 이상신(李尙信)인데 유약하여 강직하지 못했다. 정언은 조즙(趙濈)이다.】와서 아뢰기를,
“흉적이 조금 물러가고 종묘 사직이 다시 돌아왔으니 온 나라 신민의 비감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상께서 교외에 나아가 직접 맞는 것이 예의상 당연한 것인데 삼가 해조의 공사를 듣건대, 열성의 신주가 밤에 들어오고 분향례(焚香禮)도 그 이튿날 거행한다 하니, 정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