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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영조대 양잠정책과 양잠업 = A Study of the Sericulture and the Policy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in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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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조선시대 양잠업은 농업과 함께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조선전기에는 잠실의 운영과 국가의 적극적인 권잠정책으로 인해 주요 부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조선후기 양잠정책...

      조선시대 양잠업은 농업과 함께 중요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었으며, 조선전기에는 잠실의 운영과 국가의 적극적인 권잠정책으로 인해 주요 부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조선후기 양잠정책에 가장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국왕은 영조였다. 영조는 친잠례를 거행하고, 각 도 수령들을 통하여 상목재식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영조대 상목재식 정책은 당시 ‘상정(桑政)’이란 용어로 표현되고 있었는데, 이는 영조대 정치의 영역에서 양잠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영조의 양잠정책 추진은 당시 상업적 분위기의 고조와 함께 양잠업의 활성화를 가속화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곡물·직물·채소 등 다양한 물품들이 상품화되었으며 이러한 물품들은 주요 산지가 형성되고, 전국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양잠업 부분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8세기에는 길쌈에 종사하는 군현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으며 지역도 확대되고 있었다. 또한 조선후기 장시에서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고급 명주가 활발히 유통되고 있었다. 조선후기 양잠업에 종사하는 지역이 확대되고 명산지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양잠업은 쇠퇴가 아니라 점진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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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In the Joseon Dynasty, sericulture was considered as a major industry along with agriculture.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sericulture was growing into one of main subsidiary works by virtue of running sericulture stations and encouraging active se...

      In the Joseon Dynasty, sericulture was considered as a major industry along with agriculture.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sericulture was growing into one of main subsidiary works by virtue of running sericulture stations and encouraging active sericultural development policy by the nati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Yeongjo was the king who gave attention to the sericulture encouragement policy greatly. The king Yeongjo used to hold the Chinjam-ryae ceremony by himself, and drove actively the mulberry trees planting policy through the local governors of each province. The mulberry trees planting policy by the king Yeongjo was called as Mulberry Tree Politics, or Sang-Jung(桑政), and this shows that sericulture played much of a role in the important political issues in the king Yeongjo dynasty. The active drive of the mulberry trees planting policy by the king Yeongjo caused to accelerate the sericulture activity, and resultantly to give the economy a welcome boost.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variety of products, such as grains, fabrics and vegetables were merchandised as commercial goods. These products were to become famous in many producing places, and to be recognized nationwide. Such phenomena were no exception in the field of sericulture. In the 18th Century, a gradual increase was shown in the number of counties and prefectures which were attending to work at weaving by hand, and the producing area were expanded also. In the Late Joseon Dynasty, many silk fabrics of high quality representing the famous producing places were shown and distributed actively in rural markets. Considering the facts that the areas attending to work at sericulture were expanded and some famous producing places were established, we can see that sericulture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gradually prospering rather than decl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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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영조대의 양잠정책
      • 1. 친잠례의 시행
      • 2. 식상(植桑)정책의 추진
      • Ⅲ. 양잠의 생산지역 확대와 명산지 형성
      • Ⅰ. 머리말
      • Ⅱ. 영조대의 양잠정책
      • 1. 친잠례의 시행
      • 2. 식상(植桑)정책의 추진
      • Ⅲ. 양잠의 생산지역 확대와 명산지 형성
      • 1. 생산지역의 확대
      • 2. 명산지의 형성
      • Ⅳ.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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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徐有矩, "林園十六志" 서울대 고전간행회 1966

      2 金英淑, "한국복식사사전" 민문고 1-667, 1988

      3 김대길, "조선후기 장시연구" 국학자료원 1-317, 1997

      4 구완회, "조선후기 수령의 권농행정" 2 : 193-217, 1992

      5 이영학, "조선후기 상품작물의 재배" 5 : 221-242, 1993

      6 金容燮, "조선후기 농업사연구Ⅱ" 일조각 1-455, 1971

      7 홍희유, "조선중세 수공업사연구" 지양사 1-319, 1989

      8 이호철, "조선전기 농업경제사" 한길사 1-813, 1986

      9 전석담, "조선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이성과현실 1-230, 1989

      10 이욱, "조선시대 친례경의 변천과 그 의미" 한국종교학회 통권 (통권): 289-322, 2004

      1 徐有矩, "林園十六志" 서울대 고전간행회 1966

      2 金英淑, "한국복식사사전" 민문고 1-667, 1988

      3 김대길, "조선후기 장시연구" 국학자료원 1-317, 1997

      4 구완회, "조선후기 수령의 권농행정" 2 : 193-217, 1992

      5 이영학, "조선후기 상품작물의 재배" 5 : 221-242, 1993

      6 金容燮, "조선후기 농업사연구Ⅱ" 일조각 1-455, 1971

      7 홍희유, "조선중세 수공업사연구" 지양사 1-319, 1989

      8 이호철, "조선전기 농업경제사" 한길사 1-813, 1986

      9 전석담, "조선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이성과현실 1-230, 1989

      10 이욱, "조선시대 친례경의 변천과 그 의미" 한국종교학회 통권 (통권): 289-322, 2004

      11 장현주, "조선시대 견직물의 생산과 유통" 40 : 37-50, 1998

      12 장국종, "조선농업사1" 백산자료원 1-227, 1998

      13 金芝英, "영조대 친경의식의 거행과 『친경의궤』" 107 : 55-86, 2002

      14 "국역 우서"

      15 "국역 다산시문집"

      16 黃胤錫, "頤齋亂藁"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4

      17 權泰檍, "韓國近代綿業史硏究" 일조각 1-321, 1989

      18 憑虛閣李氏, "閨閤叢書" 보진재 1975

      19 盧尙樞, "盧尙樞日記" 國史編纂委員會 49 : 2005

      20 丁範朝, "海左先生文集" 民族文化推進會 239-240, 1999

      21 "朝鮮王朝實錄"

      22 "星湖僿說"

      23 "承政院日記"

      24 李命龍, "戒逸軒日記" 國史編纂委員會 42 : 1999

      25 "御製耕蠶記意"

      26 "山林經濟"

      27 "備邊司謄錄"

      28 한상권, "18세기 말~19세기 초의 장시발달에 관한 기초 연구경상도지방을 중심으로" 7 : 179-237, 1981

      29 남미혜, "18세기 蠶桑으로 치산한 전주이씨" 한국여성사학회 (9) : 49-78, 2008

      30 이윤갑, "18·19세기 경북지방의 농업변동" 53 : 61-109, 1986

      31 남미혜, "17세기 양잠정책의 추이와 양잠업의 성장" 한국사학회 88 (88): 653-68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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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6-11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 Cultural Research Institute -> Korea Culture Research Institute KCI등재후보
      2008-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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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4 0.44 0.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4 0.4 0.7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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