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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조선후기 영도의 공간적 특성과 경관의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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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49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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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영도는 부산광역시 내에서 육지와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유인도이고 하나의 자치구를 이루고 있다. 근대 이후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인구 밀집지역이 되었고 관련 연구성과도 나왔지만, ...

      영도는 부산광역시 내에서 육지와 200여 미터 떨어진 가까운 유인도이고 하나의 자치구를 이루고 있다. 근대 이후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인구 밀집지역이 되었고 관련 연구성과도 나왔지만, 근대 이전 특히 조선시대의 영도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국영 목장, 봉산으로 사용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없는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존재한 것처럼 보였던 ‘섬’ 영도는 실제로는 (육지) 사람의 생활 공간으로 존재하였다.
      부산항의 가장 바깥 경계에 위치하면서 부산의 길목이 되기도 하고, 부산항을 해양으로부터 지켜주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이런 인식은 古地圖에 나타나기도 하고 여러 고문헌 속에 기록되면서, 사람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에 자리할 수 있었다.
      국영 목장, 봉산으로 존재한 영도는 차단된, 금지된 공간이 아니라, 이를 운영하기 위한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공간이었고, 사람들이 있으면서 사당(제사 공간)이 생기는 등 상징적인 공간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육지와 가까웠기 때문에 영도와 마주보는 육지 공간, 즉 일본인 마을인 왜관과 가장 가까웠다. 특히 조선에 온 일본인들은 모두 대마도인들로 대마도와 섬이라는 같은 지형을 가진 영도에 대해 친숙하게 여기고 있었다. 왜관을 그리는 그림에도 영도가 등장하고 그들의 사당도 있는 공간이었다. 영도는 섬이라고 하여 육지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였다. 나아가 사람들에게는 경험이 이루어지고 기억이 되는 공간으로 의미를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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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Yeongdo is an inhabited island in the Busan Metropolitan City. Located 200m off the shore, it is made up of a borough. Since the modern times, it became a densely populated area with the progress of industrialization. However, little has been studied ...

      Yeongdo is an inhabited island in the Busan Metropolitan City. Located 200m off the shore, it is made up of a borough. Since the modern times, it became a densely populated area with the progress of industrialization. However, little has been studied about the island before the modern era, and especially during the Joseon Dynasty.
      This is because the island had been used as a state-operated farm and a prohibited forest, and thereby was regarded unrelated to the general public. This study investigates how Yeongdo, which appeared to have existed unrelated to Busan people, actually existed building its significance in relation to the lives of people.
      Located at the farthest boundary of Busan port, Yeongdo has been a strategic point of Busan, an important space that protected the Busan port from the field of ocean. This recognition is indicated in old maps and many other ancient documents, suggesting that, rather being unrelated to the people, the island came to hold a place in their memory.
      Yeongdo, which had existed as a state-operated farm and a prohibited forest, was actually neither a blocked nor prohibited place, but was a place that required people to operate and manage the farm and forest. With the habitation of people, shrines for ancestrial rites appeared in Yeongdo. Thus, the island became a symbolic space.
      In addition, since Yeongdo was close to the land, it was the closest place to Waegwan, the Japanese residence located on the shore facing the island. Most of the Japanese people who came to Joseon were from Tsushima, and thus felt familiar with the Yeongdo, which had topographical features of an island like Tsushima. In their drawings of Waegwan, the included Yeongdo, as a space with their shrine.
      Yeongdo, despite its topographic features as an island, was not disconnected from the land but rather existed in constant relationship with the people. Furthermore, it had been building its significance as a place, where people had experiences, a space to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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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영도의 立地
      • 3. 入島와 ‘경작’의 양상들
      • 4. 일본인의 入島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영도의 立地
      • 3. 入島와 ‘경작’의 양상들
      • 4. 일본인의 入島
      • 5.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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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조, "홍재전서"

      2 민건호, "해은일록"

      3 김세렴, "해사록"

      4 "해사록"

      5 김동철, "조선시대 통신사행렬" 국사편찬위원회․(사)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2005

      6 임학성, "조선시기 京畿 島嶼지역의 空間認識 변화 -國營牧場 설치(조선 전기)에서 水軍鎭 설치(조선 후기)로-" 도서문화연구원 (43) : 39-64, 2014

      7 김재승, "절영도와 조도의 역사․지리적 변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16 (16): 2004

      8 이유원, "임하필기"

      9 이헌영, "일사집략"

      10 "인조실록"

      1 정조, "홍재전서"

      2 민건호, "해은일록"

      3 김세렴, "해사록"

      4 "해사록"

      5 김동철, "조선시대 통신사행렬" 국사편찬위원회․(사)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2005

      6 임학성, "조선시기 京畿 島嶼지역의 空間認識 변화 -國營牧場 설치(조선 전기)에서 水軍鎭 설치(조선 후기)로-" 도서문화연구원 (43) : 39-64, 2014

      7 김재승, "절영도와 조도의 역사․지리적 변천"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16 (16): 2004

      8 이유원, "임하필기"

      9 이헌영, "일사집략"

      10 "인조실록"

      11 "승정원일기"

      12 "숙종실록"

      13 "세종실록"

      14 "선조실록"

      15 "부산고지도"

      16 배연한, "부산 영도의 도시경관 변화" 경성대학교 2015

      17 김지남, "동사일록"

      18 임수간, "동사록"

      19 "국역 해행총재 Ⅱ, Ⅳ, Ⅴ, Ⅵ, Ⅸ, Ⅹ"

      20 "계미동사일기"

      21 황기원, "경관의 해석"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22 김강식, "개항기 해항도시 부산의 絶影島鎭 설치와 운영" 부산경남사학회 (90) : 223-256, 2014

      23 "邊例集要"

      24 "輿地圖書"

      25 小田幾五郞, "草梁話集"

      26 俵裕㊀, "猪鹿逐詰之次第にみる陶山訥庵の猪狩り" 長崎縣立對馬歷史民俗資料館 2007

      27 "東萊府誌"

      28 김경옥, "朝鮮後期 島嶼硏究" 혜안 2004

      29 "朝鮮圖繪"

      30 이종봉, "朝鮮前期 慶尙道의 牧場 硏究" 부경역사연구소 (24) : 45-76, 2009

      31 權以鎭, "有懷堂集"

      32 "新對馬島誌 제2편 역사"

      33 田代和生, "新倭館" ゆまに書房 2011

      34 "慶尙道續撰地理誌"

      35 辛基秀, "大系 朝鮮通信使 제7권" 明石書店 1994

      36 "國譯 萊府日記·多大鎭公文日錄"

      37 "同文彙考"

      38 "世宗實錄地理志"

      39 "上對馬町誌"

      40 강봉룡, "‘섬의 인문학’ 담론-섬과 바다의 일체성과 양면성의 문제-" 도서문화연구원 (44) : 7-35, 2014

      41 "1871년 8도도지 釜山鎭鎭誌, 多大鎭誌, 嶺南鎭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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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4-0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Koreanology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5-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Center for Korean Studies Pusan National University -> Korean Studies Institute, Pusan National Universit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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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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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91 0.91 0.8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3 0.83 1.368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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