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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조선후기 殿牌作變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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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178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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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양난 후 향촌통제를 강화하려는 국가적 의도와 맞물려 客舍儀禮는 더욱 정기화․일상화되었다. 그러나 殿牌에 위해를 가하는 사건인 殿牌作變이 효종 6년 이래로 총 78건이 발생했다. 전패...

      양난 후 향촌통제를 강화하려는 국가적 의도와 맞물려 客舍儀禮는 더욱 정기화․일상화되었다. 그러나 殿牌에 위해를 가하는 사건인 殿牌作變이 효종 6년 이래로 총 78건이 발생했다. 전패작변은 사족 등에 의해 수령의 징치를 목적으로 발생했다는 평면적 이해와는 달리 주체·원인·목적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으며, 19세기 이후로는 당시의 주요 모순과 연관된 작변이 점증하고 있었다. 특히 민은에 의한 전패작변은 전패로 표상되는 수령권, 그리고 수령을 중심으로 재편된 관권의 자의적 통치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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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fter two invasions of the 17th century, the Gaeksa(客舍)"s ceremonies using the wooden plate that symbolize the king(殿牌, Jeonpae) had been performed regularly and ordinarily, in accordance with the plan of the dynasty to rebuild and control the...

      After two invasions of the 17th century, the Gaeksa(客舍)"s ceremonies using the wooden plate that symbolize the king(殿牌, Jeonpae) had been performed regularly and ordinarily, in accordance with the plan of the dynasty to rebuild and control the warworn country. Jeonpae placed in Gaeksa domestically symbolized the dynasty itself, and especially in the country also meant the government authority given to the local governor(守令, Suryong).
      However, despite the strengthened symbol of Jeonpae, the damage to Jeonpae(殿牌作變, Jeonpae-zakbyeon) had happened totally 78 times in the late Chosun Dynasty since the 6th year of HyoJong(孝宗). The early Jeonpae-zakbyeon was happened to castigate the Suryong. This was due to the conflict between the Suryong and the country nobility(士族, Sajok) in the country, which was caused by the enhanced national control over the country.
      As the government-leading control over the country took effect in the 18th century, the subject of Jeonpae-zakbyeon varied to Yi-hyang(吏鄕), who took charge of the practical business in the country. It is remarkable that despite the change of the regulation on Jeonpae-zakbyeon, not punishing the Suryong, Jeonpae-zakbyeon constantly happened in the 18th century. It means that the purpose and the subject of Jeonpae-zakbyeon shows a tendency to vary and expand.
      Shortly, differently with the bygone plain understanding that Jeonpaezakbyeon happened to punish the Suryong by the Sajok, it had developed in three dimension according to the variation of the subjects, causes, and purposes. Particularly, despite the limit of being individual and impulsive accidents, Jeonpae-zakbyeon was happened due to Min-eun(民隱) which was closely connected with major inconsistency that had happened since the 19th century.
      Consequently, the valuation that Jeonpae-zakbyeon didn"t mean to overcome the dynasty can be reconsidered. The reason is that the symbol which the dynasty want to infuse was reinterpreted by the local people. Furthermore, the local people saw through the limit of the dynasty"s design to rule the country by the symbolic instruments, and this was displayed through Jeonpae-zakbyeon happened by the local people especially in the 19th century. Namely, the local people not only progressively overcame the symbolic meaning of Jeonpae, but also interpreted Jeonpae as an object which they can ask to solve the inconsistency prac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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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殿牌의 표상, 그리고 균열의 지점들
      • 3. 향촌지배층의 殿牌作變
      • 4. 향민의 殿牌作變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殿牌의 표상, 그리고 균열의 지점들
      • 3. 향촌지배층의 殿牌作變
      • 4. 향민의 殿牌作變
      • 5. 殿牌作變의 추이와 그 함의
      • 6.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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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문택, "호남지역 서원의 지역적 특성과 정치적 성격―나주羅州 경현서원景賢書院을 중심으로-" 한국국학진흥원 1 (1): 55-86, 2007

      2 김인걸, "조선후기 향촌사회 권력구조 변동에 대한 시론 - 18․19세기 鄕權擔當層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19 : 1988

      3 오영교, "조선후기 사회사연구" 혜안 2005

      4 김혁, "조선후기 守令의 赴任儀禮" 조선시대사학회 (22) : 153-180, 2002

      5 윤석호, "조선조 望闕禮의 중층적 의례구조와 성격" 한국사상사학회 (43) : 145-183, 2013

      6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정치사(1800-1863) 상" 청년사 1991

      7 이수환, "조선전기 慶尙監司와 都事의 巡歷과 통치기능 ―在嶺南日記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소 (34) : 513-541, 2006

      8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아카넷 2000

      9 오영교, "세도정권기 조선사회와 대전회통" 혜안 2007

      10 김무진, "반계 유형원의 군현제론" 한국사연구회 49 : 1985

      1 김문택, "호남지역 서원의 지역적 특성과 정치적 성격―나주羅州 경현서원景賢書院을 중심으로-" 한국국학진흥원 1 (1): 55-86, 2007

      2 김인걸, "조선후기 향촌사회 권력구조 변동에 대한 시론 - 18․19세기 鄕權擔當層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19 : 1988

      3 오영교, "조선후기 사회사연구" 혜안 2005

      4 김혁, "조선후기 守令의 赴任儀禮" 조선시대사학회 (22) : 153-180, 2002

      5 윤석호, "조선조 望闕禮의 중층적 의례구조와 성격" 한국사상사학회 (43) : 145-183, 2013

      6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정치사(1800-1863) 상" 청년사 1991

      7 이수환, "조선전기 慶尙監司와 都事의 巡歷과 통치기능 ―在嶺南日記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소 (34) : 513-541, 2006

      8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은 지방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아카넷 2000

      9 오영교, "세도정권기 조선사회와 대전회통" 혜안 2007

      10 김무진, "반계 유형원의 군현제론" 한국사연구회 49 : 1985

      11 "頤齋亂藁"

      12 이해준, "韓國의 書院과 學派 硏究" 국학자료원 2000

      13 "通信使謄錄"

      14 "續大典"

      15 全用宇, "湖西士林의 형성에 대한 연구 : 16-17세기 湖西士族과 書院의 동향을 중심으로" 忠南大學校 大學院 1994

      16 "殿牌作變罪人玄元日會査文案"

      17 정은영, "朝鮮通信使와 望闕禮" 조선통신사학회 5 : 2007

      18 "朝鮮王朝實錄"

      19 양승표, "朝鮮時代 賞罰的 邑號昇降制 硏究" 홍익대학교 2001

      20 김준석, "朝鮮後期政治思想史硏究" 혜안 2003

      21 오영교, "朝鮮後期 鄕村支配政策 硏究" 혜안 2001

      22 조윤선, "朝鮮後期 綱常犯罪의 양상과 法的 대응책" 한국법사학회 (34) : 39-7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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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日省錄"

      29 "推案及鞫案"

      30 "承政院日記"

      31 "愚谷日記"

      32 "大典通編"

      33 "大典會通"

      34 이태진, "士林派의 留鄕所 復立 운동: 조선초기 성리학 정착의 배경" 진단학회 34․35 : 1972

      35 이태진, "士林派의 鄕約普及運動: 16세기의 경제변동과 관련하여"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4 : 1983

      36 "增正交隣志"

      37 "國朝五禮儀"

      38 "受敎輯錄"

      39 "備邊司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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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 1․2․3․4․5" 역사비평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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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이해준, "17세기 초 진주지방의 異坊 재편과 士族" 규장각한국학연구소 6 : 1982

      46 이정우, "17․18세기 淸州지방 士族動向과 書院鄕戰" 조선시대사학회 11 : 1999

      47 김인걸, "17, 18세기 향촌사회 신분구조변동과 儒․鄕" 규장각 한국학연구소 11 : 1990

      48 김문택, "16~17세기 羅州地方의 士族活動과 書院鄕戰" 한국학중앙연구원 11 : 1994

      49 한상권, "16․17세기 향약의 기구와 성격" 진단학회 58 : 1984

      50 정진영, "16, 17세기 在地士族의 향촌지배와 그 성격" 한국역사연구회 3 : 1990

      51 김용섭, "(신정증보판)韓國近代農業史硏究 1" 지식산업사 2004

      52 김용섭, "(신정증보판)朝鮮後期農業史硏究 2" 지식산업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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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4-04-0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Koreanology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5-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Center for Korean Studies Pusan National University -> Korean Studies Institute, Pusan National University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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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91 0.91 0.8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3 0.83 1.368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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