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사상은 하늘과 땅을 대상으로 하는 기의 운동을 이론화한 사상이다. 이는 왕권의 권위와 강화를 위한 이론으로 활용되어 도읍선정의 중요성과 연동되었다. 『詩經』, 『書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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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 부산대학교 대학원, 2019
학위논문(박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2019. 8
2019
한국어
951.9 판사항(23)
부산
v, 192 p. : 표 ; 30 cm
지도교수: 채상식
참고문헌: p. 181-187
I804:21016-00000014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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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사상은 하늘과 땅을 대상으로 하는 기의 운동을 이론화한 사상이다. 이는 왕권의 권위와 강화를 위한 이론으로 활용되어 도읍선정의 중요성과 연동되었다. 『詩經』, 『書經』, 『...
풍수지리사상은 하늘과 땅을 대상으로 하는 기의 운동을 이론화한 사상이다. 이는 왕권의 권위와 강화를 위한 이론으로 활용되어 도읍선정의 중요성과 연동되었다. 『詩經』, 『書經』, 『周易』, 『管子』, 『淮南子』, 『靑烏經』 등에서 언급된 도읍은 “좋은 기와 길한 기와 방위”에 선정되어야 하고, 그 지역은 하늘과의 조응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고려풍수의 특징을 비보풍수라고 정의하고, 이것은 인위적인 방법을 통하여 땅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의 비보풍수로 삼소, 사찰, 사탑, 궁궐, 색깔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고려의 풍수지리사상의 특징으로 몇 가지를 들었다. 첫째, 비보풍수, 불교와 도참과의 결합성이 강한 점, 왕권강화를 위하여 원용된 점, 풍수지리사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이기파의 적용이 확인된 점, 풍수요소에 사람을 중시한 점 등이다. 다음은 시대별 풍수특징을 비교하였다. 이것은 유행(유통)·대표특징·적용범주·형기·이기 등으로 분류하여 고려만의 특징을 도출하였다.
이상과 같은 풍수지리사상의 이론이나 특징을 배경으로 나말여초에서 조선전기까지 풍수지리사상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먼저, 나말여초 풍수지리사상의 형성과정에 대한 것이다. 풍수사상은 고대인의 세계관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다. 이것이 불설지심다라니경과 밀교의 택지법과 연동되면서 정리되었다. 이러한 풍수지리는 나말여초 도선선사에 의하여 사상으로 체계화되었다. 도선의 풍수지리사상은 당말송초의 중국의 사상의 흐름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당말송초는 고문운동과 함께 신유학이 정립되었고, 풍수에서도 일행과 범월봉이 중심이 되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함께 군주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도선은 일행의 형세파의 영향을 받아 物形的 形勢論을 중심으로 풍수지리사상을 정립하였다. 특히 그의 사상은 호국적인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에 중국의 신유학과 풍수지리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려 태조 왕건은 도선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비보풍수로써 왕조를 건국하였다. 물론 태조의 이러한 정치적 행위는 왕권강화와 함께 민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전기 서경천도론의 전개와 풍수지리사상에 대해 정리하였다. 태조 왕건은 고려왕조를 창업하면서 고려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자신이 하늘의 수명을 받은 존재임과 동시에 고려가 신라를 계승한 왕조임을 강조하였다. 즉 왕건은 하늘의 수명을 받아 하늘이 지정한 명당에 태어난 인물이며, 그에 의하여 삼한통일을 완성할 것이라는 점을 드러내었다. 이점에서 고려 태조의 수명의식은 풍수지리사상과 연동되어 등장하는 특색이 있다. 이러한 왕건의 신성성은 高麗史 고려세계와 훈요십조에서도 확인이 된다. 다음은 신라의 승계여부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가 신라를 승계했음을 밝히기 위하여 두 가지 점을 강조하였다. 우선 왕건은 선양을 중시하는 오행상생적 입장에서 이를 정리하였고 다음 궁예를 前主로 보고, 자신을 고려의 後主로 지칭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고려는 금덕인 신라를 승계한 수덕의 왕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조는 수덕의 오운을 가진 고려의 완성을 위하여 수덕의 기운이 강한 서경경영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定宗은 서경으로 천도를 계획하였다. 成宗과 靖宗은 서경중심의 서경의 10월치제-개경의 11월 치제를 제정하였다. 10월은 수덕이 시작하는 달이므로, 서경에서 10월치제를 행한다는 것은 이 지역의 수덕의 기운을 중시하겠다는 것으로 파악된다. 인종은 이러한 체제를 완성하고자 서경으로 천도를 계획하였다. 인종은 서경에서 유신지교를 반포하였고, 그 내용은 기존의 것보다 더 혁신적인 것이었다. 즉 인종은 서경천도를 통하여 새로운 고려를 내세우고 그 속에서 왕권강화를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인종은 민심확보 차원에서 인간이 지닌 불안감과 내면적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무당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서경은 묘청의 반란이라는 부정적 인식으로 인하여 수도로서의 위상은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였다.
다음은 고려후기 延基사상의 발전과 개경중심체제의 형성을 정리하였다. 이 시기 자주 등장하는 연기사상은 개경중심체제를 강화하는 비보풍수에서 비롯하였다. 이는 터가 명당이 되지 못할 자리라도 비보를 함으로써 명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종 11년인 1157년에는 개경 궁궐 주변에 壽德宮, 安昌宮, 靜和宮, 瑞豊宮, 太平亭, 觀瀾亭, 養怡亭 등을 건립하였고, 다음해에는 白州 重興闕을 창건하는 등 개경 중심의 비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삼소제도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삼소지를 통한 개경중심체제는 충렬왕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연기사상으로 또 주목할 것은 산천비보도감이다. 이는 신종이 술사들을 모아 국내의 산천을 비보하여 왕업을 연장하는 의도에서 만든 것으로, 풍수지리뿐만 아니라 불교를 통해서도 개경의 연기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한편 이러한 개경중심체제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완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현실적으로 왕권을 둘러싼 정치세력의 갈등 등이 초래되어 풍수 등에 도참적 성격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마지막으로 여말선초 한양천도론의 전개와 풍수지리사상의 정비에 대해 정리하였다. 공민왕은 반원정치와 함께 천도를 하고자 하였다. 공민왕의 심중에는 남경이 있었다. 남경천도 논의를 공민왕 5년에 시행했다는 점도 이러한 정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공민왕의 남경천도의 의도는 보우의 한양천도주장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남경천도를 통하여 9산선문의 기능을 회복하고자 하였지만, 그가 담선법회 등을 강조하는 것에서 도선의 비보풍수의 회복을 통해 불교의 중흥을 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은 국왕권의 강화와도 직결되는 것이므로 공민왕의 의중과 일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왜구의 침입으로 남경천도론은 중단되었고, 그 대체지로 부각된 지역이 삼소였다. 그러나 이곳은 피난지였기 때문에 천도지로서는 적합하지 못하였다. 즉 우왕대 북계가 물살이 빨라서 조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천도지에 대한 이견은 도선뿐만 아니라 태조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공양왕은 한양천도를 본격적으로 내세우면서 태조의 비보풍수를 중심으로 이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불교를 중시하여 연복사를 중창하고 담선법회를 설행하였다. 이점은 고려 태조의 왕조창건의 기치와 일치되는 것이고, 공민왕은 이로써 고려를 새롭게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단행한 경기제의 확대는 이점을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한양천도는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도 왕자의 난, 하륜의 무악천도론 등이 대두되어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지만 태종 5년에 단행되었다. 그리고 고려적 색채를 배제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하였다. 먼저 불교를 탄압하였다. 이점은 풍수와 불교의 습합 부분을 끊기 위한 것이었다. 태조는 조계종의 승려들이 요구한 담선법회 개설을 거부하였다. 태종은 한양의 비보사찰을 부정하여 이 사찰에 속한 전지와 노비를 한양의 오교양종으로 옮길 것을 주장하였다. 다음은 풍수지리서에 대한 정비를 본격적으로 하였다. 도선의 풍수지리사상을 ‘비기류’ 또는 ’지리서‘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거나 이견을 표출하여 시비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이는 성리학 중심의 정치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한편으로 풍수에 관련한 정보를 국왕이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주요어: 풍수지리사상, 천도, 왕권강화, 음양오행설, 비보, 서경, 개경, 남경
목차 (Table of Contents)
1 金勝東, 金勝東, "易思想辭典", 부산대학교 출판부, 1998
2 金光彦, 金光彦, "韓國의 住居民俗誌", 民音社, 1988
3 홍영의, "고려말 정치사 연구", 혜안, 2005
4 徐閏吉, "韓國密敎思想史硏究", 불광출판부, 1994
5 하현강, "「고려 서경의 행정구조」", 「고려 서경의 행정구조」한국사연구5, 1970
6 金龍南, "성리학, 유불도의 만남", 운주사, 2003
7 韓㳓劤, "朝鮮時代思想史硏究論攷", 한국학술정보, 2001
8 李龍範, "「風水地理說」, 한국사6", 국사편찬위원회, 1983
9 朴菖熙, "「李奎報의 「東明王篇」詩」", 「李奎報의 「東明王篇」詩」歷史敎育11・12합집, 1969
10 李廷柱, "麗末鮮初 儒學者의 佛敎觀",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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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徐閏吉, "韓國密敎思想史硏究", 불광출판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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