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팔경은 중국에서 발원하였지만 그것의 모티프는 한국으로 수용되면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전승되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발원한‘瀟湘八景’이 한국으로 수용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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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7
학위논문(석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2017. 8
2017
한국어
서울
71 p. ; 26 cm
지도교수: 李亨大
참고문헌: p. 6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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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팔경은 중국에서 발원하였지만 그것의 모티프는 한국으로 수용되면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전승되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발원한‘瀟湘八景’이 한국으로 수용된 ...
소상팔경은 중국에서 발원하였지만 그것의 모티프는 한국으로 수용되면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전승되고 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중국에서 발원한‘瀟湘八景’이 한국으로 수용된 이후에 그것이 어떤 전승 과정을 거치며 국문시가 양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주지하다시피, 중국 소상강의 경치는 예로부터 풍광이 뛰어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그것을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아왔다. 이 과정에서 그곳의‘소상팔경(瀟湘八景)’모티프는 중국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로 전승되어 예술 작품으로 창작되었다. 그것과 관련하여 2장에서는 소상팔경의 연원과 한국적 전승 과정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중국에서 소상팔경의 문예 양식은 시문과 서화, 더 나아가 음악에 이르는 영역에 걸쳐 있었다. 중국에서의 소상팔경은 10세기 중엽에 이미 성립되어 있었고, 적어도 11세기 후기에는 유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상팔경>이 언제 한국으로 수용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보다 백여 년 늦은 무신집권기에 해당하는 고려 명조 15년(1175)의 기록이 있다. 고려 명종은 무신 정권 아래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려는 의도에서 소상팔경 그림을 심미적인 대상으로 탐닉하였다. 이들 소상팔경 한문詩詞 형식의 전승 양상을 살펴보면 한시와 사 양식이라는 이원적 흐름이었다. 한시 양식은 관조적 경관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반면에 사 양식은 가창적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측면이 두드러졌었다. 소상팔경 한시는 고려 명종 시기를 지나서 이인로(李仁老, 1152~1220)나 이규보(李奎報, 1168∼1241) 등과 같은 사대부들이 짓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사 작품은 고려말엽에 이르러 이제현(李齊賢, 1281~1367)에 의해서 지어졌을 뿐이다. 그것은 詞가 악기의 반주로 가창되었는데 고려에서는 詞調가 복잡하여 그대로 부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상팔경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시조나 가사와 같은 국문시가 양식으로 변용되어 창작되는 주체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3장에서는 소상팔경 모티프가 국문시가 양식으로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고 있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소상팔경과 관련된 문학 작품은 중국을 시작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공유하며 발전해 온 문예 양식의 하나였다. 한국의 소상팔경은 고려조에 중국과 교류하면서 소상팔경도를 비롯한 한시, 이어서 사 작품까지 유입되면서 조선 말기까지 창작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소상팔경 문학이 중국처럼 한문시가 양식에 한정되지 않고 국문시가인 시조와 가사로 변용되어 재창조되었다. 조선조에 소상팔경은 시조와 가사로 나타났고, 조선 말기에는 잡가로 가창되었으며 판소리 양식에 삽입되어 부분창으로도 불렸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의 소상팔경은 양식의 다양화를 가져왔고 다량의 국문시가 작품들이 나왔다. 먼저 소상팔경 모티프가 시조나 가사 양식으로 수용되어 창작된 것을 시가의 수용과 주체화의 과정으로 우선 파악할 수 있다. 이들 소상팔경을 노래한 시조를 보면 중국의 소상팔경과 같고 다른 점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소상팔경의 여덟 풍경을 각각의 주요 모티프를 중심으로 내용이 유형화되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주요 모티프를 중심으로 그와 같은 유형을 따르지만 때로는 모티프를 변형시켜 아름다운 풍광 묘사와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은 물론, 인생무상과 태평성대를 노래하는 등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였다. 시조에서는 소상팔경 모티프가 개별적으로 변용되며 확산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소상팔경 모티프를 어떻게 변용시켜 작품화하였느냐에 따라 강호한정의 유유자적한 삶을 형상화하기도 하였고, 연군 모티프로 전환되어 태평성대를 노래하기도 하였다. 소상야우의 모티프인 순임금과 관련된 아황과 여영의 고사는 개인적인 유흥이나 심사를 담아내는 모티프로 굴절되기도 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상팔경 모티프가 강호자연과 함께 취락적인 내용으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반면에 소상팔경 모티프가 개별적으로 변용된 시조 작품과 달리, 잡가에서는 소상팔경의 통합적 경관을 통해 유람자의 시선이 총체적으로 조망되는 특징이 드러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잡가에서는 소상팔경 모티프가 단가나 판소리 허두가로 불러지면서 그것들의 장르적 습합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한국의 소상팔경 양식은 중국과 공유하고 있었지만, 그것의 모티프는 자국의 토양에 맞춰 변용되어 주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역대 시조 작가들은 소상팔경의 주요 모티프를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활용하여 시적 내용을 끊임없이 변용시키며 다양한 주제를 형상화하였다. 한편, 한국의 소상팔경은 한시나 사 작품, 그리고 시조 뿐만 아니라 가사에서도 교훈적인 작품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작자의 시적 대상에 대한 감정을 투영하는 서정 장르로 활용되었다. 소상팔경이 일제강점기 초기에 잡가나 단가로 많이 가창된 것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쓸쓸함이나 애상감과 같은 서정적 낭만성이 암울한 시대와 크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도 보인다. 이 논문에서는 소상팔경의 주요 모티프를 가지고 중국과 한국이 한문시가 양식을 공유하면서 한국처럼 자국의 시가 양식을 탄생시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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