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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연구의 제 문제 -임진・정유재란 발발 원인에 대한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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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6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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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고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임진・정유재란의 전쟁 원인에 대해 최근 일본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정유재란 발발배경으로 논의되고 있는 일본 ...

      본고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지금까지 논의되었던 임진・정유재란의 전쟁 원인에 대해 최근 일본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정유재란 발발배경으로 논의되고 있는 일본 측의 ‘조선왕자의 來日 문제’를 하데요시가 필리핀諸島長官에게 보낸 서장을 통해 ‘조선 남부 경상도지역의 영토 확보와 무역재개’와 관련 있음을 고찰하였다.
      또한 전쟁 발발 전후로 히데요시가 발급한 문서를 보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궁극적인 목표가 조선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과 선교사들의 기록에도 히데요시의 명 정복의도가 그의 명예심과 권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였다.
      결국, 히데요시 정권의 기본적인 권력구조는 전국을 지배하는 일원적인 지배체제가 아니었고, 동시에 여러 지방의 大다이묘들을 압도할 만큼 충분한 군사력을 소유한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군역 동원을 통해서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여 집권적인 권력 편성을 최상위 목표로 한 뒤, 명까지 정복하여 자신의 공명심과 명예욕을 높이면서 영토 확장을 목표로 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하자 강화협상을 통해 조선의 부산, 경상도 남부 지역만이라도 무역 거점으로 두고, 전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강력한 국내 지배질서를 형성하려 했던 것이다. 즉 대외적인 긴장관계가 아직도 히데요시 정권에서는 필요했던 것이다.
      부연하면,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시기를 전후로 동아시아 주변국에 복속과 입공을 강요하면서 특히 필리핀과의 무역을 강조했다. 지속적인 전쟁수행을 위해서 오사카-후시미-나고야-조선-필리핀이라는 군수경제를 통해 일본 열도 전역의 지배 강화를 도모하려 했다. 이런 배경 하에서 경상도 남부 지역, 부산은 무역관계 구축의 거점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정유재란의 발발 원인은 명분적인 ‘조선왕자의 來日 문제’가 아니라 당시 일본의 권력구조와 무역환경과 연관된 ‘조선 남부 경상도 지역의 영토 확보와 무역재개’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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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examined the cause of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which has been discussed so far in Korea and Japan. In particular, I introduced a study that revealed the cause of war by Hideyoshi, which recently became a topic in Japan...

      This study examined the cause of outbreak of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which has been discussed so far in Korea and Japan. In particular, I introduced a study that revealed the cause of war by Hideyoshi, which recently became a topic in Japan. In addition, around the 7th sexagenary cycles of the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I reexamined the ‘issue of visiting Japan by the prince of Joseon’ which is argued as the background of an outbreak of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by Japan.
      As a result, it is indisputable that Hideyoshi did not start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gainst the Joseon only according to documents issued by Hideyoshi around the time of the outbreak of war. I also paid attention to consistent records of missionaries that Hideyoshi’s intention to conquer Ming dynasty was to raise his honor and authority.
      However, the basic power structure of Hideyoshi regime was neither nationwide unitary governance system nor he had military power enough to prevail daimyos of a few regions simultaneously. Therefore, it seems that he had the highest goal of centralized power formation by strengthening his foundation through military mobilization, and aimed to expand territory and raise his ambition and honor by conquering the Ming dynasty. As the war was not going in his favor, he seemed to secure Busan and Southern Gyeongsang-do area of Joseon through peace negotiations to secure a base for trade.
      In this regards, Hideyoshi emphasized subjection and payment of tribute to marginal states of East Asia and the Philippines while delcaring the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especially, he emphasized trade with the Philippines. It seems that he aimed to strengthen his control over entire Japanese islands through military economy of Osaka-Fushimi-Nagoya-Joseon-Philippines for the sake of continuous conduct of war. Under such a background, he had to secure Southern Gyeongsang-do area and Busan. Therefore, it is reasonable to understand the cause of outbreak of the Japanese Reinvasion of Korea in 1597 as ‘securing territory in southern part of Gyeongsand-do, Joseon and reopening trade’ rather than ‘issue of visiting Japan by the prince of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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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에 대하여-최근 일본 연구의 소개-
      • 3. 정유재란의 원인에 대하여-‘조선왕자 來日문제’-
      • 4. 맺음말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에 대하여-최근 일본 연구의 소개-
      • 3. 정유재란의 원인에 대하여-‘조선왕자 來日문제’-
      • 4.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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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박수철, "전쟁과 동북아의 국제질서" 일조각 [서울] 2006

      2 이완범, "임진왜란의 국제정치학: 일본의 조선분할요구와 명의 對조선 종주권 확보의 대립, 1592-1596" 한국학중앙연구원 25 (25): 89-137, 2002

      3 조원래, "임진왜란사 인식의 문제점과 연구과제" 한국사학사학회 (26) : 5-60, 2012

      4 정구복, "임진왜란사 연구와 한・중・일 중요 사료" 한국사학사학회 (34) : 5-34, 2016

      5 계승범,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휴머니스트 2007

      6 계승범, "임진왜란 중 조명관계의 실상과 조공책봉관계의 본질" 한국사학사학회 (26) : 117-145, 2012

      7 김경록, "임진왜란 연구의 회고와 제안"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100) : 67-118, 2016

      8 정두희,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휴머니스트 2007

      9 이계황, "동아시아의 세계와 임진왜란" 경인문화사 2010

      10 노영구, "동아시아세계와 임진왜란" 경인문화사 2010

      1 박수철, "전쟁과 동북아의 국제질서" 일조각 [서울] 2006

      2 이완범, "임진왜란의 국제정치학: 일본의 조선분할요구와 명의 對조선 종주권 확보의 대립, 1592-1596" 한국학중앙연구원 25 (25): 89-137, 2002

      3 조원래, "임진왜란사 인식의 문제점과 연구과제" 한국사학사학회 (26) : 5-60, 2012

      4 정구복, "임진왜란사 연구와 한・중・일 중요 사료" 한국사학사학회 (34) : 5-34, 2016

      5 계승범,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휴머니스트 2007

      6 계승범, "임진왜란 중 조명관계의 실상과 조공책봉관계의 본질" 한국사학사학회 (26) : 117-145, 2012

      7 김경록, "임진왜란 연구의 회고와 제안"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100) : 67-118, 2016

      8 정두희,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휴머니스트 2007

      9 이계황, "동아시아의 세계와 임진왜란" 경인문화사 2010

      10 노영구, "동아시아세계와 임진왜란" 경인문화사 2010

      11 朴慶洙, "동아시아 법문명권 속의 일본사-유교핵(儒敎核)정치문화를 중심으로-" 한얼 2016

      12 하우봉, "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전쟁" 한일관계사학회 (39) : 331-368, 2011

      13 이계황, "도요토미 히데요시" 살림출판사 2019

      14 "鹿苑日記"

      15 "鹿児島縣史舊記雜錄後篇"

      16 上垣外憲, "鎖國前夜ラプソギィ" 講談社選書メチエ 2018

      17 平川新, "通説を見直す-16∼19世紀の日本" 清文堂 2015

      18 淸水有子, "近世日本とルソン-「鎖國」形成史再考-" 東京堂出版 2012

      19 김문자, "豊臣秀吉의 冊封問題와 壬亂期의 講和交涉 : 정유재란의 원인을 중심으로" 중앙사학연구소 (36) : 253-288, 2012

      20 堀新, "豊臣秀吉の 「唐入り」構想-その成立 表明と現實化" 125 : 2019

      21 "豊臣秀吉 朝鮮侵略關係史料集成"

      22 盛本昌廣, "豊臣期における金銀遣いの浸透過程" 83 : 2000

      23 米谷均, "豊臣政權の正體" 柏書房 2014

      24 北島万次, "豊臣政權の對外認識と朝鮮侵略" 校倉書房 1990

      25 김문자, "豊臣政權 末期의 자연재해와 정치적 상황 ― 文祿 5년(1596)의 지진발생을 중심으로 ―" 동양사학회 (99) : 185-216, 2007

      26 "組屋文書"

      27 "立花家文書"

      28 米谷均, "秀吉の虛像と實像" 笠間書院 2016

      29 村井章介, "秀吉の世界征服構想と「女の領域」" 125 : 2019

      30 "毛利家文書"

      31 深谷克己, "東アジア法文明圏の中の日本史" 岩波書店 2012

      32 "日本往還日記"

      33 鴨川達夫, "日本史の森をゆく" 中央新書 2014

      34 津野倫明, "戰爭と平和<生活と文化の歷史學 5>" 竹林舍 2014

      35 "島津家文書"

      36 "宣祖實錄"

      37 김강식, "壬辰倭亂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 부경역사연구소 (38) : 5-47, 2016

      38 김문자, "北島万次, 임진왜란 연구의 재조명" 경인문화사 2019

      39 津野倫明, "丁酉再亂時の日本の目的と日本側の軍事行動" 한일관계사학회 (57) : 83-122, 2017

      40 松田毅一, "フロイス 日本史 2" 中央公論 1977

      41 平川新, "スペインとポルトガルの日本征服論をめぐって" 815 : 2018

      42 清水有子, "イベリア・インパクト論再考~イエズス会の軍事的性格をめぐって~" 773 : 2014

      43 박경수, "‘이베리아 임팩트’와 임진전쟁" 일본사학회 (46) : 125-160, 2017

      44 中島樂章, "16世紀末の九州~東南アジア貿易-加藤淸正のルソン貿易をめぐって" 118 (1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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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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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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