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산문사에서 고려 중기는 형식적으로 騈體에서 散體로 완전하게 전환되고, 공용적 실용문을 탈피하여 개인성이 발현되는 산문이 창작되어 문학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하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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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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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 ; 당송고문 ; 한문산문 ; 이제현 ; 고문창도 ; 한중문화교류사 ; 성리학 ; The middle of the Goryeo Dynasty ;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 唐宋古文 ; Chinese prose ; Lee Je-hyun ; 李齊賢 ; advocation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 古文倡導 ; the history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 韓中文化交流史 ; Neo-Confucianism ; 性理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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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93-12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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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산문사에서 고려 중기는 형식적으로 騈體에서 散體로 완전하게 전환되고, 공용적 실용문을 탈피하여 개인성이 발현되는 산문이 창작되어 문학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하지만 이...
한문산문사에서 고려 중기는 형식적으로 騈體에서 散體로 완전하게 전환되고, 공용적 실용문을 탈피하여 개인성이 발현되는 산문이 창작되어 문학적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하지만 이제현이 고문을 창도했다는 학계의 통설 때문에 고려 중기는 고문에 성취를 보지 못한 ‘적막한 시기’로 규정되고 있다. 본고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이제현이 고문을 창도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검토하고, 고려 중기의 한문산문 창작 현장에서 당송고문이 실현된 사례를 살펴보았다.
먼저 고려 후기의 문학적 전환 또는 특징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개념을 과도하게 적용한 ‘고문’이 아니라 사상과 문학 등에 합당하게 적용할 수 있는 키워드인 ‘성리학’이 적합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한유의 고문운동과 이제현의 고문창도를 무리하게 연결하면 500년이라는 간극이 발생하며, 중국 산문사의 흐름과 잣대를 그대로 한국 산문사에 적용할 경우 수용 주체의 자발성이나 창의적 능력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논했다.
다음으로 고려 전·중기는 당송고문이 유입되어 창작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되었음을 밝혔다. 고려 전·중기 문인들은 당송팔대가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하였고, 당송고문의 형식적 특징인 騈體에서 散體로의 전환을 이루었으며, 당송고문을 대표하는 양식인 송서, 설, 논, 산수유기, 가전 등을 창작하였다. 또한 당송고문이 수용된 증거로 한유, 유종원, 소철, 왕안석의 표현기법이 박문, 임춘, 이규보의 편지, 묘지명, 산수유기에 실현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 한문산문사는 고려 전기에 당송고문이 수용되고, 고려 중기에 당송고문이 정착·확립되고, 고려 후기에 성리학적 이념이 투사된 산문이 창작되어 500년 간 이어질 성리학적 글쓰기의 시대를 열었다고 거칠게나마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이제현이 고문을 창도하게 되면 그 흐름이 이상해진다. ‘이제현의 고문창도’설을 폐기해야만 고려 시대 한문산문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제현의 고문창도는 성리학자들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유효하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time of sino-Korean literature in mid-Goryeo period is when ‘byunchae(騈體)’ was completely transitioned to ‘sanchae(散體)’ in style. It is when literature transitioned from being practical statements for public use and started to be c...
The time of sino-Korean literature in mid-Goryeo period is when ‘byunchae(騈體)’ was completely transitioned to ‘sanchae(散體)’ in style. It is when literature transitioned from being practical statements for public use and started to be created as proses that reflect individual characteristics. However, due to the common academic view that sees Lee Je-hyun advocating for classical style prose, the mid-Goryeo period is defined as the “dreary period’ when the classical style prose did not flourish. This study reviews the issues that arise if Lee Je-hyun had advocated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and studied the cases where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was practiced in sino-Korean literature.
First, this study asserts that the keyword ‘Neo-Confucianism(性理學)’ is more appropriate for defining the transition of literature in the later Goryeo period or its characteristics because it is reasonably applied in philosophy, literature, and etc., not ‘prose’, which is overly applied with the historical concept. Grouping Han-yu’s Classic Chinese Prose Movement(古文運動) and Lee Je-hyun’s advocation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creates the gap of five hundred years. Also, this study discusses that applying the flow and standards of Chinese prose to the history of Korean prose will result in ignoring the spontaneity or creative ability of the recipient.
Secondly, this study reveals that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was actually seen in the creative writing in the early to mid-Goryeo period. The writers in the early to mid-Goryeo period clearly recognized the existence of the Eight masters in Tang and Song(唐宋八大家). The proses at the time transitioned from byunchae(騈體) to sanchae(散體), which shows the characteristic of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and the writers wrote in styles that represent the literary style of Tong and Song , such as songso(送序), seol(說), non(論), sansuyugi(山水遊記), and gajeon(假傳). Also, the writing techniques of Han-yu(韓愈), Liu Zongyuan(柳宗元), Su Zhe(蘇轍), and Wang Anshi(王安石) were found in letters, memorial inscriptions(墓誌銘), and sansuyugi(山水遊記) of Park Moon(朴文), Lim Chun(林椿), and Lee Kyu-bo(李奎報)
It can be summarized that the history of Chinese prose in Goryeo Dynasty accepted the literary style of Tang and Song in the early Goryeo period, and the literary style was settled and established in mid-Goryeo period, then in later Goryeo period, the proses with the Neo-Confucius philosophy were written, opening the door of the Neo-Confucius writing era, which continued on for about five hundred years. However, if it is viewed that Lee Je-hyun had advocated for writing classical style prose, it disrupts such flow. In order to find the right place of the history of Chines prose in Goryeo Dynasty, the theory of ‘Lee Je-hyun’s advocacy for writing classical prose’ must be discarded. In other words, Lee Je-hyun’s advocation for writing classical prose is only valid among the ‘league of Neo-Confucian schol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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