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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명응의 역사학과 역사비평 - 『자치통감강목삼편』의 편찬배경과 정통론의 시대적 의미 - = Seo Myeong-eung’s History and Historical Criticism - The Compilation Background and Meaning of the Period in Zizhitongjiangangmu sanb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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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reason why Seo Myeong-eung published the Zizhitongjiangangmu sanbian is related to which books to read the history of the Ming Dynasty in Gyeongyeon and Seoyeon. King Sukjong and King Yeongjo read about the history of the Ming Dynasty in Gyeongyeo...

      The reason why Seo Myeong-eung published the Zizhitongjiangangmu sanbian is related to which books to read the history of the Ming Dynasty in Gyeongyeon and Seoyeon. King Sukjong and King Yeongjo read about the history of the Ming Dynasty in Gyeongyeon with the name Hwangmyeong Tonggi and Minggi Pyeonnyeon. In 47 years(1771) of King Yeongjo's reign, however, there were many people who owned Zurin's Myeonggijimnyak or many booksellers who distributed the book, who died under questioning or were reduced to outside labor. There is a record in Myeonggijimnyak that “Lee Sung-gye is the son of Lee In-im”, “The father and son killed four Goryeo kings and founded the Joseon Dynasty” and “Injo is a king who exalted the throne”. In the process, Jin Geon's Hwangmyeong Tonggi, which was recognized as the source of the book, was also problematic, and the two books were burned to the ground. However, because the history of the Ming Dynasty needs a book to be used in Gyeongyeon, the Huang Ming Tonggi Jimnyak and the Minggi Pyeonnyeon were reissued in the year after modifying the problematic sections.
      A year later, King Jeongjo, who planned a compilation of history books based on the so-called "imjin" year of fortune. King Jeongjo set a explanatory notes for Seo Myeong-eung and compiled the history of the Ming Dynasty as Gangmok style historiography. The original book was named Zizhitongjiangangmu sinbian(資治通鑑綱目新編), but it was changed to the Zizhitongjiangangmu sanbian(資治通鑑綱目三編) in the second edition. The reason for the re-revision is probably because they saw YuZhuan Zizhitongjiangangmu sanbian(御撰資治通鑑綱目三編) published in the Qing Dynasty. The three emperors, Hong Gwang(Bokwang), Yong Mu(Tangwang), and Yeongnyeok(Gye-wang), were described as orthodox, saying, "The three emperors of the late Song Dynasty are the same examples of the three emperors and the two emperors of the Tso Han." In comparison, Emperor Geon Leung(Gojong) of the Qing Dynasty did not recognize Emperor Hong Gwang of the Ming Dynasty as orthodox in YuZhuan Zizhitongjiangangmu sanbian (御撰資治通鑑綱目三編), but in Yuding Zizhitongjiangangmu sanbian (御定資治通鑑綱目三編) Emperor Hong Gwang(Bokwang) was recognized as the orthodox dynasty, and Tang and Gyewang were treated as addenda.
      Finally, from the orthodoxy point of view of Gangmok style historiography, I pointed out the problem of interpretation of data, which is thought to be the theoretical basis of Joseon's Junghwa Idea, and raised the need for a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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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서명응이 『자치통감강목삼편』을 편찬하게 된 배경에는 경연과 서연에서 명나라 역사를 강독할 때 어느 책을 교재로 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숙종과 영조는 경연에서 『황명통기』와 『...

      서명응이 『자치통감강목삼편』을 편찬하게 된 배경에는 경연과 서연에서 명나라 역사를 강독할 때 어느 책을 교재로 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숙종과 영조는 경연에서 『황명통기』와 『명기편년』으로 명나라 역사에 대하여 강독하였다. 그런데 영조 47년(1771)에 “이성계는 이인임의 아들”, “두 부자가 고려왕 4명을 시해(弑害)하고 조선왕조를 세웠다”는 기록과 “인조는 찬탈자”라는 기록이 있는 주린의 『명기집략』을 소지하거나 유통시킨 서적상들이 대거 심문을 받고 효수되거나 외방의 노비로 전락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명기집략』의 저본으로 인식된 진건의 『황명통기』도 문제가 되어 이 두 책은 불살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역사에 대해 경연에서 사용할 책이 필요하므로 『황명통기집략』과 『명기편년』은 문제가 되는 부분을 수정하여 그 해에 재간행되었다.
      1년 뒤 세손이었던 정조는 이른바 ‘임진’년 운수론을 토대로 기전체 『명사』를 대본으로 한 강목체 역사서 편찬을 기획하였다. 정조는 서명응에게 범례를 주고 명나라 역사를 강목체 역사서로 편찬하게 하였다. 초고본은 『자치통감강목신편』이라고 책명을 지었으나 재교본에서는 『자치통감강목삼편』으로 바뀌었다. 재교에 들어간 이유는 아마도 청나라에서 20권 본으로 편찬된 『어찬자치통감강목삼편』을 입수하였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재교본 『강목삼편』은 명나라 말 의종이후 홍광제(복왕)·융무제(당왕)·영력제(계왕) 등 세 황제를 송나라 말기의 3황제[조현(趙㬎)·조하(趙昰)·조병(趙昺)], 촉한(蜀漢)의 2제(帝)의 예와 같다며 정통으로 서술하였다. 이에 비해 청나라 건륭제(고종)는 『어찬자치통감강목삼편』(20권본)에서는 명 의종까지만 정통으로 인정하였으나, 『어정자치통감강목삼편』(40권본)에서는 홍광제(복왕)까지 정통왕조로 인정하고 당왕·계왕은 부록으로 처리하였다.
      끝으로 강목의 정통론 시각에서 조선중화사상의 이론적 기반으로 생각되는 사료해석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재검토가 필요함을 문제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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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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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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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4-2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Korean Society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KCI등재후보
      2005-04-10 학술지등록 한글명 : 韓國史學史學報
      외국어명 : The Korean Journal of History of Histor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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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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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7 0.47 0.6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1 0.54 1.937 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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