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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1696년 안용복·뇌헌 일행의 도일과 의승수군에 관한 해석학적 연구 = Hermeneutical Study on Ahn Yong-Bok, Noehun and their Party’s arriving at Japan in 1696 and the Relation of Eui-Seung-Su-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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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ing Sukjong and Chosun government officials including Nam Gu-Man, a prime minister of the Chosun dynasty, paid special attention to defense policy and guard the frontier area. The five monks including Noehun, the head of Gumo monk soldiers who went t...

      King Sukjong and Chosun government officials including Nam Gu-Man, a prime minister of the Chosun dynasty, paid special attention to defense policy and guard the frontier area. The five monks including Noehun, the head of Gumo monk soldiers who went to Japan with Ahn Yong-bok in 1696, were not ‘the drifting merchant monk’ but the head of monk soldiers and regular monk soldiers(Eui-Seung-Su-Gun) under the Jeolla Jwasuyeong. The party of An Yong-bok and Noehun comprised “Civil and Official Task Force Team” for confirmation to the Korean-dominated Ulleungdo and Dokdo islands. And they went together to accomplish the purposes of special mission of the Chosun government. By the way, why did the Chosun government send Uiseungsugun, a Buddhist monk, instead of regular army or a Jeolla Jwasuyeong navy? The first reason is to avoid military and diplomatic disputes with Japan, which can be caused by the dispatch of regular troops. Second, the five members of Heungguksa Temple including Noeheon, were not only qualified to safely protect and escort civilian litigants such as Ahn Yong-bok and Lee In-Seong, but also the Chosun government's exquisite choice to avoid military and diplomatic disputes with Japan. Third, these party, from the Tokugawa shogunate of Japan, not only aims to be proved that sovereignty over Ulleungdo and Dokdo is Korean, but at the same time they also aims at Japan’s domestic spying or reconnaissance on the situation. The five monks, including Noeheon the head of Gumo monk soldier, who went with Ahn Yong-bok in 1696, were not ‘the drifting merchant monk’ but the head of monk soldiers and regular monk soldiers(Eui-Seung-Su-Gun) under the Jeolla Jwasuyeong. The conclusion is that The party of An Yong-bok and Noehun comprised “Civil and Official Task Force Team” for confirmation to the Korean-dominated Ulleungdo and Dokdo islands. And they went together to accomplish the purposes of special mission of the Chosun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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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숙종 임금과 영의정 남구만 등 조선정부 관리들은 국방정책과 변방관리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논문은 1696년 안용복의 2차 도일에 대해 안용복 개인의 주도적 기획에 ...

      숙종 임금과 영의정 남구만 등 조선정부 관리들은 국방정책과 변방관리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논문은 1696년 안용복의 2차 도일에 대해 안용복 개인의 주도적 기획에 따라 실행에 옮긴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리고 안용복의 2차 도일과 관련하여 "숙종실록" 1694~1697년의 기록을 비롯하여 에도시대 일본 고문서인 "원록9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와 "죽도기사" 등에서 안용복과 함께 뇌헌 일행 5명을 포함 모두 11명이 도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안용복과 동행했던 순천승(여수 흥국사) 뇌헌 일행은 전라좌수영 소속 의승수군이었으므로 이는 조선 정부로부터 모종의 지령을 받아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도일을 도모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닐까라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조선 정부가 정규군인 관군이나 전라좌수영 수군이 아닌 승려 신분인 의승수군을 파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첫째, 정규군을 파견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일본과의 군사·외교적인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뇌헌 등 5인의 흥국사 소속 의승수군들은 안용복, 이인성 등 민간인 소송단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호송하는데 적임자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군사·외교적인 분쟁을 피할 수도 있는 조선 정부의 절묘한 선택이었다. 셋째, 이들 일행은 일본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자산도(독도)가 조선의 영유임을 확인받기 위한 소송 목적도 있었지만, 일본 국내 상황에 대한 정찰 또는 정탐 목적도 있었다. 1696년 안용복과 함께 도일한 금오승장 뇌헌을 포함한 5명의 승려들은 ‘떠돌이 장사승’이 아닌 전라좌수영 산하 정규군인 의승장과 의승수군이었다. 결론적으로, 안용복과 뇌헌 일행은 《울릉도·독도 영유권 확립을 위한 민·관 합동 TF팀》을 구성하여 조선정부의 특별한 임무에 따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도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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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진옥, "호국의 성지 흥국사" 우리출판사 2003

      2 W. 딜타이, "해석학의 탄생" 지만지 2008

      3 송은일, "충무공 이순신과한국해양 3"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2016

      4 신윤호, "충무공 이순신과 한국해양 3"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2016

      5 W. 딜타이, "체험·표현·이해" 책세상 2009

      6 "증보문헌비고"

      7 "죽도기사"

      8 "죽도고"

      9 고영섭, "조선후기 승군제도의 불교사적 의미" 한국사상문화학회 (72) : 205-236, 2014

      10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1 진옥, "호국의 성지 흥국사" 우리출판사 2003

      2 W. 딜타이, "해석학의 탄생" 지만지 2008

      3 송은일, "충무공 이순신과한국해양 3"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2016

      4 신윤호, "충무공 이순신과 한국해양 3" 해군사관학교 해양연구소 2016

      5 W. 딜타이, "체험·표현·이해" 책세상 2009

      6 "증보문헌비고"

      7 "죽도기사"

      8 "죽도고"

      9 고영섭, "조선후기 승군제도의 불교사적 의미" 한국사상문화학회 (72) : 205-236, 2014

      10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 신구문화사 2010

      11 최영성, "조선의 밀사 안용복" 도서출판문사철 2019

      12 김용태, "조선 중기 의승군 전통에 대한 재고: 호국불교의 조선적 발현" 동국역사문화연구소 (61) : 87-120, 2016

      13 양은용, "임진왜란과 호남의 불교의승군"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 : 1994

      14 김덕수, "임진왜란과 불교의승군" 경서원 1993

      15 양은용, "임진왜란 이후 불교의승군의 동향 – 전주 송광사의 개창비 및 신출 복장기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4 : 2003

      16 "일성록"

      17 "이충무공전서"

      18 "원록각서" 제이앤씨 2009

      19 권오엽, "원록각서" 제이앤씨 2009

      20 "원록9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 영남대 독도연구소 (창간) : 2005

      21 이태우, "울릉도 독도로 건너간 거문도 초도 사람들" 도서출판 선인 2019

      22 성당제, "약천 남구만의 고토 회복의지" 우리한문학회 10 : 2004

      23 권정, "안용복의 울릉도 도해의 배후 - 동래부사와 부산첨사 -" 일본어문학회 (55) : 505-524, 2011

      24 정태만, "안용복 2차도일 당시 순천승 뇌헌의 역할" 한국세계문화사학회 (54) : 27-55, 2020

      25 "승정원일기"

      26 권혁성, "순천승 雷憲의 일본도해 -호국승으로서의 뇌현-" 대한일어일문학회 (55) : 375-394, 2012

      27 "숙종실록"

      28 이익, "성호사설" 한길사 1999

      29 박지영, "돗토리번 사료를 통해 본 울릉도 쟁계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독도연구소 (25) : 213-250, 2018

      30 권정, "독도에 관한 일본 고문서 연구 -『竹島渡海由來記拔書控』(죽도도해유래기발서공)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일본학회 (38) : 23-41, 2011

      31 강신엽, "남구만의 국방사상" 한국고전번역원 14 : 1991

      32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서울] 2014

      33 윤재환, "藥泉 南九萬이 바라본 安龍福의 意味" 동방한문학회 (69) : 307-338, 2016

      34 이규철, "藥泉 南九萬의 北邊 上疏와 廢四郡・厚州鎭 설치 논의" (사)한국인물사연구회 (26) : 159-184, 2016

      35 권오엽, "安龍福의 號牌" 한국일본문화학회 (64) : 219-240, 2015

      36 김병우, "安龍福 연구현황과 과제" 경주사학회 34 (34): 73-116, 2011

      37 권오엽, "南九萬의 密使 安龍福" 한국일본어문학회 1 (1): 429-452, 2015

      38 권정, "「숙종실록」기록으로 본 안용복 -안용복 진술의 타당성에 관해-" 한국일본언어문화학회 (19) : 417-434, 2011

      39 유미림, "‘안용복 밀사’설에 관한 비판적 고찰" 독도연구소 (27) : 123-16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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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7-10-18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독도 · 평화연구소 -> 독도연구소
      영문명 : Dokdo and Peace Research Institute -> Dokdo Research Institute
      2007-08-24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독도연구소 -> 독도 · 평화연구소
      영문명 : Dokdo Research Institute -> Dokdo and Peace Research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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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8 0.38 0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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