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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초 官軍의 재편과 성격에 대한 재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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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광복 이후 1990년대까지의 임진왜란 연구는 의병에 관한 성과가 풍부하지만, 전쟁 극복의 주요한 주체 중의 하나인 관군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다. 이는 전쟁 당시 관군의 허약성과 조선 정부...

      광복 이후 1990년대까지의 임진왜란 연구는 의병에 관한 성과가 풍부하지만, 전쟁 극복의 주요한 주체 중의 하나인 관군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다. 이는 전쟁 당시 관군의 허약성과 조선 정부의 무능력한 전쟁 대응 능력을 보여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임진왜란에 대한 기존 인식의 재검토를 제기한 성과를 시작으로 관군의 전쟁 대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성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 발발 직후 관군은 정상적인 동원 체제를 작동하여 일본군의 침공에 대응했지만, 예상치 못한 대규모 일본군의 압도적인 공세로 초기 전투에서 연이어 패배하였다. 결국 관군 지휘부가 붕괴되고, 국왕 선조가 도성을 떠나 개성-평양-의주로 피난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한성 점령 이후 관군의 대응 양상을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표면적으로 관군은 거의 붕괴되고 의병이 전쟁을 주도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실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조선 조정은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북방 지역 관군의 가세를 통한 군사력 보강과 남부지역 근왕군의 출진 등 여러 조치들을 단행했고, 실제로 공세 행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반면, 일본군은 한성을 점령하였음에도 이전보다 진격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조선 수군의 활동과 명군의 참전으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한편, 각 道의 관군도 신속한 재편이 이루어졌다. 이후 관군은 조직적인 반격을 감행함으로써, 주요 지역을 수복함과 동시에 일본군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양상을 나타났다. 또한 관군은 화포를 비롯한 화약무기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점차 압도하기 시작했다. 개전 이후 2~3개월이 지난 후에는 관군이 일본군에 대해 우위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육상에서의 조선 관군의 대응이 거의 무기력하였으며, 결국 의병이 이를 대신하여 전투를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간의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관군의 전투력과 일본군에 대한 자신감이 급속히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조선 왕조가 유지해온 강력한 행정력과 자기 방어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상과 같이 관군의 전쟁수행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전쟁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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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임진왜란 개전 직후 관군의 대응에 대한 재인식
      • 3. 한성 함락 이후 관군의 재편에서 나타난 전쟁의 양상 변화
      • 4. 의병의 성격과 관군과의 관계
      • 국문초록
      • 1. 머리말
      • 2. 임진왜란 개전 직후 관군의 대응에 대한 재인식
      • 3. 한성 함락 이후 관군의 재편에서 나타난 전쟁의 양상 변화
      • 4. 의병의 성격과 관군과의 관계
      • 5.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亂中雜錄"

      2 "樂齋先生日記"

      3 육군본부, "한국군사사 7" 경인문화사 2012

      4 김경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4

      5 김경태, "임진전쟁 초기 경상좌도 일본군의 동향과 영천성 전투"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95) : 363-394, 2015

      6 류주희, "임진왜란을 전후한 尹卓然의 활동 — 「北關日記」를 중심으로 —" 한국사상문화학회 (28) : 137-172, 2005

      7 민덕기, "임진왜란에 활약한 조선 장수들의 성장기반에 대하여 -니탕개의 난과 관련하여-" 전북사학회 (50) : 107-136, 2017

      8 장준호, "임진왜란시 朴毅長의 慶尙左道 방위활동"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76) : 61-88, 2010

      9 이장희, "임진왜란사연구" 아세아문화사 1999

      10 정해은, "임진왜란기 대구 수령의 전쟁 대응과 사족의 전쟁 체험" 부산경남사학회 (98) : 1-33, 2016

      1 "亂中雜錄"

      2 "樂齋先生日記"

      3 육군본부, "한국군사사 7" 경인문화사 2012

      4 김경태, "임진전쟁기 강화교섭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4

      5 김경태, "임진전쟁 초기 경상좌도 일본군의 동향과 영천성 전투"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95) : 363-394, 2015

      6 류주희, "임진왜란을 전후한 尹卓然의 활동 — 「北關日記」를 중심으로 —" 한국사상문화학회 (28) : 137-172, 2005

      7 민덕기, "임진왜란에 활약한 조선 장수들의 성장기반에 대하여 -니탕개의 난과 관련하여-" 전북사학회 (50) : 107-136, 2017

      8 장준호, "임진왜란시 朴毅長의 慶尙左道 방위활동"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76) : 61-88, 2010

      9 이장희, "임진왜란사연구" 아세아문화사 1999

      10 정해은, "임진왜란기 대구 수령의 전쟁 대응과 사족의 전쟁 체험" 부산경남사학회 (98) : 1-33, 2016

      11 이선희, "임진왜란기 경상좌도 지역 청도군수의 임용실태와 전쟁대응" 한국학연구소 49 : 171-198, 2018

      12 김진수, "임진왜란기 朴晉의 군사 활동과 평가" 고려사학회 (60) : 243-276, 2015

      13 심승구, "임진왜란과 권율장군" 전쟁기념관 1999

      14 박재광, "임진왜란과 권율장군" 전쟁기념관 1999

      15 민덕기, "임진왜란 초기의 전개상황과 그 배경" 전북사학회 (39) : 111-138, 2011

      16 김경숙, "임진왜란 초기 지방관의 守土活動 - 善山府使 丁景達 형제의 활동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회 (65) : 131-16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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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김종수, "임진왜란 초기 방어실태와 웅치·이치 전투" 전북사학회 (51) : 335-36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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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정해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좌도 안집사 김륵의 역할과 활동" 영남문화연구원 (28) : 357-38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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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정해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 수령의 동향과 의병 지원 활동" 조선시대사학회 (70) : 133-168, 2014

      24 김성우, "임진왜란 초기 制勝方略戰法의 작동 방식과 상주 북천전투" 한국사연구회 (163) : 221-257, 2013

      25 이호준, "임진왜란 초기 下三道 勤王軍 활동 연구" 19 : 2012

      26 하태규, "임진왜란 초 호남지방의 실정과 관군의 동원실태" 역사문화학회 16 (16): 37-72, 2013

      27 신명호, "임진왜란 중 선조 직계가족의 피난과 항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81) : 115-150, 2011

      28 전라문화연구소, "임진왜란 웅치전투와 전적지" 선명 2006

      29 전북사학회, "임진왜란 웅치전투와 이치전투" 전북사학회・전라북도 완주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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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김강식, "임진왜란 시기 松巖 金沔 軍의 의병 조직 변화와 경상우도 의병의 변화상" 18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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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김학수, "김성일(金誠一)의 임란 중 활동과 인적 네트워크" 경남문화연구원 (41) : 61-98, 2014

      39 안동군자리문화선양사업회, "군자리 그 문화사적 성격" 토우 2001

      40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경북지역 임진란사 1・2・3" 경상북도 2018

      41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 법전연구반, "각사수교" 청년사 2002

      42 육군본부, "韓國軍制史-近世朝鮮前期篇-" 1968

      43 허태구, "金誠一 招諭 활동의 배경과 경상우도 義兵 봉기의 함의" 경남문화연구원 (41) : 27-60, 2014

      44 北島萬次, "豊臣秀吉の朝鮮侵略" 吉川弘文館 1995

      45 李魯, "譯註 龍蛇日記" 한일문화연구소 1960

      46 申仡, "譯註 亂蹟彙撰" 역락 2010

      47 中野, "秀吉の軍令と大陸侵攻" 吉川弘文館 2006

      48 中野, "石田三成伝" 吉川弘文館 2017

      49 "盤谷集"

      50 "白雲齋實紀"

      51 "栢巖集"

      52 許善道, "朝鮮時代 火藥兵器史硏究" 일조각 1994

      53 北島萬次, "朝鮮日々記・高麗日記" そしえて 1982

      54 "征蠻錄"

      55 "寄齋史草"

      56 "宣祖實錄"

      57 "宣祖修正實錄"

      58 "孤臺日錄"

      59 張學根, "壬辰倭亂기 官軍의 活躍" 22 : 1992

      60 송정현, "壬辰倭亂論: 官軍과 義兵의 역할 문제" 8 : 1994

      61 서인한, "壬辰倭亂史"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7

      62 노영구, "壬辰倭亂 초기 양상에 대한 기존 인식의 재검토 - 和歌山縣立博物館 소장 「壬辰倭亂圖屛風」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31) : 169-197, 2003

      63 김강식, "壬辰倭亂 義兵의 性格 變化-義兵의 官軍化 問題-" 17 : 1995

      64 이재정, "別破陣과 조선후기 大砲 운용" 64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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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30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일관계사학회 -> 한일관계사연구 KCI등재후보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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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1.5 1.5 1.3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7 1.09 1.872 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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