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庵遺稿 目录

獨庵遺稿
독암유고
獨庵遺稿
獨庵遺稿
趙宗敬
조종경
1760
  • 韩国文集丛刊(续)第2集
  • -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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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题及凡例


  • 조선 시대 독암(獨庵) 조종경(趙宗敬, 1495~1535)의 문집이다. 본집은 둘째 아들 온양 군수(溫陽郡守) 조정추(趙廷樞)가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편차(編次)하여 온양에서 1587년에 활자(活字)로 인행(印行)하였고, 1643년에는 증손 풍안군(豐安君) 조흡(趙潝)이 목판(木板)으로 문집을 간행한 중간본(重刊本)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그 후 1760년에 7대손 경상도 관찰사 조엄(趙曮)이 구본(舊本)에 묘문(墓文)과 유사(遺事)를 부록으로 붙여서 상주(尙州)에서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고, 65판의 판목을 남장사(南長寺) 보각(譜閣)에 보관하였다. 본집(本集)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내용은 시(詩)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수(卷首)에는 1643년에 지은 박미(朴瀰)의 구간서(舊刊序)와 1760년에 지은 정존겸(鄭存謙)의 중간서(重刊序)가 있다. 시(詩)는 200제가 시체(詩體)에 관계없이 혼재되어 실려 있다. 간지(干支)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저자가 김안로(金安老) 일파에게 축출되어 서울을 떠나 과천(果川) 청계산(淸溪山) 아래에서 눌러 살면서 지은 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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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集은 獨庵 趙宗敬(1495 : 燕山君1 ~ 1535 : 中宗30)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仲子 廷樞가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1587年 溫陽郡守로 赴任하면서 溫陽에서 活字로 初刊한 후, 曾孫 富平都護府使 㩉이 1643年 木板으로 重刊하고, 7代孫 慶尙道觀察使 曮이 墓文 등 附錄을 追加하여 1760年 尙州에서 木板으로 三刊한 것이다.
    ○ 分量은 不分卷 1冊으로 總 6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 : 奎6219)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2×16.2(cm)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成百曉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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