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復齋遺稿 目录
觀復齋遺稿
관복재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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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構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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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题及凡例
조선 시대 관복재(觀復齋) 김구(金構, 1649~1704)의 문집이다. 본집은 필사 연도 미상의 괘인사본으로, 1780년 이전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집은 원집 9권, 습유 합 6책으로 되어 있다. 권1은 시(詩)가 시체 구분 없이 실려 있는데 칠언 절구가 주류를 이루며, 차운시와 연작시인 〈노장(老將)〉, 〈노병(老兵)〉, 〈노선(老仙)〉, 〈노농(老農)〉, 〈노승(老僧)〉과 이민서(李敏敍)를 애도한 만시 등이 있다. 권2는 잡저로 스승 박세채(朴世采)와 사돈 이세백(李世白)에게 보낸 편지, 관동의 화악산, 춘천 등지를 유람하고 지은 〈동행일기(東行日記)〉 등이다. 권3~7은 소차로, 1683년 1월에서 1703년 12월 사이에 올린 것을 각 시기별로 모았다. 그중에서 〈청파주제영조계(請罷主第營造啓)〉는 각사 관아의 건물 및 공주의 저택과 조사(朝士)의 집을 짓는 역사에 대한 정지를 청한 것이다. 권8~9는 계(啓), 서계, 의(議), 전(箋)이고 습유는 소차로서 1682년에 인현왕후의 고명문제로 청나라 사신의 모욕적인 행위에 통분하며 국격을 지켜야 한다고 진언한 〈청물허노사친전왕후고명소(請勿許虜使親傳王后誥命疏)〉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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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觀復齋 金 構(1649:仁祖27 ~ 1704:肅宗30)의 文集이다.
○ 本集은 轉寫經緯가 不分明한 罫印寫本이다.
○ 分量은 9卷 6册으로 總 45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延世大學校 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貴245)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0.4×12.9(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拾遺의 第22ㆍ23板은 板次가 漏落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梁鴻烈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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