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龍齋遺稿 目录

五龍齋遺稿
오룡재유고
五龍齋遺稿
五龍齋遺稿
南溟學
남명학
1801
  • 韩国文集丛刊(续)第93集
  • -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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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题及凡例


  • 조선 시대 오룡재(五龍齋) 남명학(南溟學, 1731~1798)의 문집이다. 본집(本集)은 사자(嗣子) 양룡(陽龍)이 수집(蒐集)ㆍ편차(編次)하여 유한준(兪漢雋)의 교수(校讎)를 받아 1801년 운각활자(芸閣活字)로 인행(印行)한 초간본(初刊本)이다. 본집(本集)은 불분권(不分卷) 1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卷首)에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가 1800년에,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과 저암(著菴) 유한준(兪漢雋)이 1801년에 지은 서(序)와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문(文)에는 서(書), 제문(祭文), 〈만록(漫錄)〉, 〈북설(北說)〉, 강주(講奏), 〈환향전책(還餉殿策)〉 등이 있는데, 〈북설〉은 북방지역의 습속,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어지지만 유풍(儒風)이 이어져 근래에 이재형(李載亨), 한몽린(韓夢麟) 등이 문학을 진흥한 일, 왜란과 호란 때의 호국(護國), 영조대의 북방 인재 등용 등에 대한 기술이다. 강주(講奏)는 1765년과 1766년에 유생으로서 경연에 참여하여 영조와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환향전책〉에서는 임금이 몸소 절약하고 엄중한 법으로 수령을 다스려야 환향의 폐단을 없앨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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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集은 五龍齋 南溟學(1731 : 英祖 7 ~ 1798 : 正祖 22)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嗣子 陽龍이 蒐集ㆍ編次하여 兪漢雋의 校讎를 받아 1801년 芸閣活字로 印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不分卷 1冊으로 總 72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 藏本(圖書番號 : 奎4800)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2.1×14.7(cm)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李承昌이고, 監修者는 梁鴻烈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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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名 著者 出版年 著作时代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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