懶隱集 目录
懶隱集
나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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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標
이동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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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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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题及凡例
조선 시대 나은(懶隱) 이동표(李東標, 1644~1700)의 문집이다. 본집은 현손 한응(漢膺)과 5대손 형상(衡相)이 남아 있는 시문들을 수습하여 원집 5책, 속집 1책으로 정리하였고, 한응(漢膺)과 형상(衡相)이 몰한 후인 1880년에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9권, 속집 2권 합 6책으로 되어 있다. 원집의 권수에는 허전(許傳)의 서(序)와 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권1~2는 시(詩)로, 대체로 시기별로 편차되어 권1에는 출사하기 전의 작품들이, 권2에는 출사한 이후의 작품들이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중에서 〈수전종교행(水田種蕎行〉은 시골 노인의 이야기에 빗대어 장부의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말하였고, 〈풍악로차최상사운(楓嶽路次崔上舍韻)〉부터 〈숙해상(宿海上)〉까지 시들은 저자가 1690년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지은 작품들이다. 권3은 소(疏), 차(箚), 계(啓), 전(箋)이고 권4는 서(書)이다. 권5~6은 서(序), 기(記), 잡저(雜著), 상량문(上樑文), 행록(行錄) 등이고 권7~9는 부록(附錄)이다. 속집은 시문과 서(書)가 수록된 권1~2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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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懶隱 李東標(1644:仁祖22~1700:肅宗26)의 文集이다.
○ 本集은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訥隱 李光庭과 權 萬의 校勘을 거친 稿本이 癸酉年에 燒失된 후, 著者의 玄孫 漢膺과 五代孫 衡相이 燒失되고 남은 詩文을 바탕으로 蒐集하여 元集과 續集으로 再編한 것을 1880年에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原集 9卷, 續集 2卷 合 6册으로 總 376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奎1669)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1×18.0(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續集 卷2의 第3~12板은 卷次가 「一」로 誤記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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记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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