甪里集 目录
甪里集
녹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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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聖謙
고성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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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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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题及凡例
조선 시대 녹리(甪里) 고성겸(高聖謙, 1810~1886)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집은 저자 사후 9년 뒤인 1895년에 아우 문겸(文謙)과 숙겸(淑謙)의 주도로 상주(尙州) 녹리정(甪里亭)에서 인출되었다. 본집은 14권 7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두에 총목이 실려 있다. 본서의 절반에 해당하는 권1~7이 시문으로 빼어난 시적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권1은 부(賦), 시(詩)이다. 부는 선친이 생전에 심어 놓고 아끼던 강성황(江城黃)이라는 품종의 국화에 대해 읊으며 추억한 〈강성황부(江城黃賦)〉가 있다. 시는 〈문서학성행우분유작(聞西學盛行憂憤有作)〉은 천주교가 성행하여 윤리도덕과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가 무너짐을 개탄하는 내용으로 시대상을 알 수 있으며, 7언절구 33수로 구성된 〈전원락(田園樂)〉은 전원생활을 핍진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권10은 서(序), 기(記), 지(識), 발, 상량문이다. 기는 광해군 시절에 이이첨(李爾瞻)에게 반대하여 낙향했던 선조 인계(仁繼)와 관련된 정자인 월봉정(月峯亭)을 중수한 기록, 녹리정을 건립하기도 전에 기문부터 지어놓은 〈녹리암장기(甪里巖莊記)〉이다. 권말에는 아우 문겸이 1895년에 지은 발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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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甪里 高聖謙(1810:純祖10~1886:高宗23)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弟 文謙ㆍ淑謙 등이 著者가 自編하고 李晩寅ㆍ李이 校勘ㆍ刪削한 稿本에 附錄을 追加하여 1895年 尙州 甪里亭에서 活字로 印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4卷 7册으로 總 483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延世大學校 學術情報院藏本(圖書番號:우천장서 11)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2.5 ☓ 17.0(cm)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鄭弼溶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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