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庵集 目录
愼庵集
신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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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晩慤
이만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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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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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题及凡例
조선 시대 신암(愼庵) 이만각(李晩慤, 1815~1874)의 문집이다. 저자의 문인 이재기(李載基)와 외종제 유지호(柳止鎬)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한 고본(稿本)을, 저자의 외종질 유연박(柳淵博)과 족자 중철(中轍) 등이 유정호(柳廷鎬)의 산정 교감을 받고 만사와 제문, 가장과 행장 등을 부탁하여 받은 뒤 부록으로 붙여 10권 5책으로 인행한 것이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2~6의 전반부는 서(書)이다. 대체로 안부를 묻거나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성리학 내지 전적에 대한 주석 및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거나 시문에 대한 품평을 담고 있다. 권7은 잡저, 자설, 서(序), 기(記)이다. 자설은 이건(李건(王+建))의 자(字)를 덕표(德杓)로, 권상고(權相皐)의 자를 순해(舜諧)라고 짓게 된 이유를 적은 것이다. 서는 김진화(金鎭華)의 《탄와집(坦窩集)》과 임화세(任華世)의 문집에 붙인 서문 등이 있고, 〈송이법조책오흥서(送李法祖責吳興序)〉는 임천서원이 훼철되자 항소한 일로 오흥(吳興)으로 유배 가는 이문직(李文稷)을 전송하며 지은 것이다. 권미에 저자의 족자 중철이 지은 발(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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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愼庵 李晩慤(1815:純祖15~1874:高宗11)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門人 李載基와 外從弟 柳止鎬 등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한 稿本을, 著者의 外從姪 柳淵博과 族子 中轍 등이 柳廷鎬의 刪定ㆍ校勘을 받고 門人들의 協助를 받아 1904年 이후 活字로 印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0卷 5册으로 總 457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D1-A569)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3×17.3(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6의 第11板, 卷8의 第37板, 卷10의 第21板은 狀態가 不良하여 同一本인 延世大學校 學術情報院藏本(圖書番號:811.98/이만각/신)으로 代替하였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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