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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주태수 풍신행장과 기주태수 풍신정정이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다.
섭주태수(摂州太守)와 기주태수(耆州太守)가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섭주태수 풍신행장(豊臣行長)과 기주태수 풍신정성(豊臣正成)은 삼가 조선국 예조대인 합하께 아룁니다.
무술년 겨울 천조(天朝)의 여러 노야(老爺)들이 귀국과 우리나라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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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조신이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오다.
6722. 풍신조신이 강화를 청하는 글을 보내오다.
풍신조신(豊臣調信)이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풍신조신은 머리 조아려 조선국 예조 대인 합하께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무술년·기해년·경자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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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 원가강이 서계를 보내오다.
일본국 원가강(源家康)의 서계는 다음과 같다.
“수년 동안 의지(義智)와 조신(調信) 등에게 명하여 천고의 맹약을 다지도록 하였으나 그 일을 완수하지 못한 채 조신이 죽었으므로 지난해부터는 그의 아들 경직(景直)에게 명하여 그 일을 주선토록 하였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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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강이 수길과는 다르다는 의도로 원씨를 칭한 것을 주문에 반영하다.
승문원이 아뢰기를,
“지금 가강의 서계를 보건대 ‘일본국왕 원가강(源家康)’ 이라고 호칭하였으니 이것은 옛날 원씨(源氏)의 전통을 계승하여 수길(秀吉)의 소위와는 전부 상반되게 한다는 실상을 보이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따라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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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수길이 죽자 울산 ․ 사천 ․ 순천의 적이 모두 바다를 건너 가다.
이보다 앞서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죽고 원가강(源家康)이 용사하면서 여러 장수들의 처자를 볼모로 잡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오게 하니, 울산·사천·순천 세 방면의 적이 모두 바다를 건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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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신 ․ 조훤 ․ 손문욱 등을 일본에 파견하다.
전계신(全繼信)·조훤(趙暄)·손문욱(孫文彧)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에 앞서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및 평경직(平景直)이 차왜 원신안(源信安)·귤지정(橘智正)을 부산에 보내 예조에 치서하였는데, 원가강(源家康)의 뜻이라고 하면서 사신을 보내 통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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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왜인 마고사구 ․ 마다화지 등을 저자에서 목베었다.
대마도 왜인 마고사구(麻古沙九)·마다화지(麻多化之) 등을 저자에서 목베었다. 처음 왜추 원가강(源家康)이 국정을 독단하고 한결같이 풍신수길(豊臣秀吉)의 소행과는 반대로 하여 계속 피로인의 쇄송을 허락하는가 하면, 이어 차왜 귤지정(橘智正)을 보내 부산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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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 ․ 경섬, 서장관 정호관 등을 일본에 파견하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경섬(慶暹), 서장관 정호관(丁好寬) 등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원가강(源家康)이 신사를 여러 번 청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은 사행의 명칭 붙이는 것을 어렵게 여겨 오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에 이르러 가강이 서계를 보내 굳이 청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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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답사 여우길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면서 포획되었던 남녀를 쇄환하다.
회답사 여우길(呂祐吉) 등이 일본으로부터 돌아오면서 포로가 되었던 남녀 1,240여 명을 쇄환하였다. 그런데 우길이 가져온 일본 국서에는 전면에 원수충(源秀忠)【가강(家康)의 아들이다.】이라고만 쓰고 국왕을 쓰지 않았으며, 또 예조에 답한 서계에는 우리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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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사 신경진이 일본 객사의 상경을 불허한 일에 대해 선위사와 상의한 내용을 치계하다.
경상감사 신경진(辛慶晋)이 치계하였다.
“3월 25일 선위사가 접대 잔치를 베푼 이튿날, 신이 동래로부터 부산에 도착하여 객사의 상경을 허락하지 않는 일로 선위사 이지완(李志完)과 상의하였습니다. 신이 객사의 상경을 허락지 않는 일과 다음달 1일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