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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구2019첨단 과학문명의 발달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넘쳐나는 풍족한 물질문화는 인간의 욕망을 끝없이 부추긴다. 극도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의 팽배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갈수록 황폐하여지고 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어지러운 사회에 어떻게 사는 것이 나를 위하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정의롭게 사는 것인지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혼란한 사회에서는 그 사회 지도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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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욱2014남명학연구남명의 연보는 无悶堂 朴絪이 1628년 덕산에서 남명의 둘째 아들인 칠원 군수을 지낸 慕亭 曺次磨로부터 부탁을 받고 1636년 편찬을 하였 다. 그 후 謙齋 河弘度, 澗松 趙任道, 林谷 林眞., 寒沙 姜大遂 등 私淑人들의 수정 보완을 거쳐 1700년 발간된 .南冥先生別集.에 실려 처음 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 후 1814년 무민당의 후손들이 .무민당 집.을 발간하면서 집안에 전해오던 무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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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욱2013남명학연구忠毅公 大笑軒 趙宗道(1537~1597)는 남명 선생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招諭使 金誠一(1538~1593)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웠고, 1597년 丁酉再亂때 안음현감 郭준(1551~1597)과 함양 黃石山城에서 왜장 加蕂淸正이 인솔한 적군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소헌은 어릴 때부터 家學 또는 지역의 先輩 학자들로부터 익힌 공부를 비롯해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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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2013淵民學志宜寧의 학문을 기록한 문헌은 비교적 늦게 나와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학문을 상고할 자료가 없다. 의령은 조선 중기의 대학자 退溪 李滉와 南冥 曹植이 밀접한 관계를 맺은 특별한 고을이다. 의령에서 학문이 시작 된 것은 退溪와 南冥의 제자들로부터 비롯된다. 退溪와 南冥 兩門의 제자인 竹유 吳澐의 『竹유集』이 의령의 학자가 남긴 현존하는 최초의 文集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거의 동시대 사람으로 남명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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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욱2012남명학연구본 논문은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개소 20주년을 맞아 남명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남명학 연구에 대해 시기별로 발전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1990년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설립을 기준으로 1990년 이전과 남명학연구소 설립 후인 1990년부터 2011년까지를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이 되는 2001년을 기점으로 삼아 전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남명 조식 선생에 대한 연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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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철2012남명학연구이 논문의 목적은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이루어진 남명 및 남명학에 대한 외국 연구자의 업적과 성과들을 회고하고 정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연구사의 검토와 정리에 앞서 외국 연구자의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자국의 연구 동향을 일정 정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전제에 입각해 외국인 연구자의 대다수를 점하는 중국과 일본에 있어서의 유교 내지 유학에 대한 인식과 연구 동향에 대해 개략적으로 검토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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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景柱2002退溪學과 韓國文化밀양은 고려조 이래로 嶺南雄府로 불리면서 인재가 배출되어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 고려 중엽 西河 林椿의 시에, "風存禮義鄕 多儒如蜀郡"이라 하였고, 또 "老儒久歎斯文喪 始喜名都禮義新"이라 하였으니 密陽의 禮義 풍속은 유래가 오랜 것이다. 朝鮮이 개국한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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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景柱2002退溪學과 韓國文化밀양은 고려조 이래로 嶺南雄府로 불리면서 인재가 배출되어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 고려 중엽 西河 林椿의 시에, "風存禮義鄕 多儒如蜀郡"이라 하였고, 또 "老儒久歎斯文喪 始喜名都禮義新"이라 하였으니 密陽의 禮義 풍속은 유래가 오랜 것이다. 朝鮮이 개국한 뒤로 松隱 朴翊, 春堂 下中良, 春亭 下季良, 格齊 孫肇瑞 등이 文學行誼로 알려졌고, 점필제선생 金宗直이 이곳에서 태어나 儒風을 크게 떨침에 迂拙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