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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海南半島의 古代社會와 對外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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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0644295

      • 저자
      • 발행사항

        무안 : 목포대학교 대학원, 1999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석사) -- 목포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한국사전공 , 1999. 8

      • 발행연도

        1999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KDC

        911.98 판사항(4)

      • 발행국(도시)

        전라남도

      • 형태사항

        55 p.(단면인쇄) : 삽도, 지도 ; 26 cm.

      • 소장기관
        • 국립목포대학교 도서관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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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해남반도의 고대 세력집단의 동향과 대외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해남반도의 고대 세력집단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해남반도 고대사회가 성립되기 시작한 1~3...

      본 연구에서는 해남반도의 고대 세력집단의 동향과 대외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첫 번째로 해남반도의 고대 세력집단의 동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해남반도 고대사회가 성립되기 시작한 1~3세기대의 배경을 문헌자료와 고고학자료를 통해 살펴보았으며, 두 번째로 4세기 이후 해남반도 세력집단의 동향을 세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세력집단의 대외관계를 살펴보았다.
      첫째 3세기 이전 해남반도는 백포만 일대를 중심으로 對국제교류상의 寄港地로서 발전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해남반도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인 영향에 기인한 바가 크다. 즉 한반도의 서‧남해가 연결되는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은『三國志』왜인전의 기사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고고학적 유적인 군곡리 패총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군곡리 패총에서는 중국대륙과 교역을 입증하는 貨泉이 출토되었으며 倭와의 교류를 입증하는 유물로는 骨角器, 卜骨, 土製曲玉, 骨制뒤꽃이 등이 출토되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두 번째 해남반도의 세력집단은 점차 세 권역으로 구분되어 진다. 이 세 지역은 북일면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역, 삼산면을 중심으로 한 서북부 권역, 현산면을 중심으로 한 서남부 권역인데 지형적인 영향이 크다. 이 시기 해남반도는 점차 활발해지고 있던 국제교류를 바탕으로 기항지적인 성격에서 점차 영산강 유역 ‘웅관고분사회’의 外港 役割을 한다. 이러한 사실은『晋書』張華條의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데 해남반도 백포만 일대에 있던 ‘新彌國’을 위시로 하여 영산강 유역의 사회가 중국에 ‘遣使朝獻’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그동안 국제교류상의 중심지에 있던 해남반도 백포만 일대에 있던 신미국이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사회 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新彌諸國’등 20(29)여국 등이 晋에 遣使朝獻했을 때 그 대표 격으로 앞에 기록되었다.
      세 번째로는 해남반도가 당시 국제정세와 연결되어 외세가 해남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4세기 후반에 해당되는 시기로 가장 먼저 해남반도에 진출한 것은 백포만 일대를 거점화한 백제세력이다. 백제의 백포만 일대 진출은 ‘백제-가야-왜’로 연결되는 해남의 교역로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백포만 일대는 변화를 겪게 되다. 그 동안은 군곡리 일대를 중심으로 번성했지만 군사적인 목적상 천혜의 요지인 현산면 일대로 그 중심을 옮기게 된다. 그러면서 백제는 이 지역에 백제의 직접적인 세력보다는 ‘옹관고분사회’의 토착세력을 이용하여 영산강유역의 ‘옹관고분사회’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남하로 5세기 후반 해남반도와 영산강 유역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고구려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백제는 신라‧가야‧영산강유역의 ‘옹관고분사회’‧왜로 연결되는 대 고구려 방어망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힘의 균형은 6세기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백제는 옹관고분사회에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게 되었으며, 왜, 가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사회는 해남반도로 진출하여 백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자체 발전을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때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이 해남의 북일면 일대였다. 중요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 백포만 일대는 이미 백제에 부용화된 세력이 있었으며, 삼산면 일대는 영산강 유역의 일부세력과 왜 세력이 있었다. 북일면 일대는 영산강유역 ‘옹관고분사회’와는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으나 왜나 가야 지역과는 더 쉽게 접촉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북일면 지역은 당시 대 고구려 방어망이 형성되면서 하나의 자유무역항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백제뿐만 아니라 왜나 가야,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사회까지 모두 진출하여 활동하였다.
      백제는 점차 영산강 유역의 영역화에 힘쓰게 되었는데 가야나 왜 세력 역시 이 해남반도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게 된다. 그 중에서 특히 왜 세력은 백제에 커다란 위협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왜에 대해 위기심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는 498년(동성왕 20)에 북일면 일대를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백제-가야-왜’로 연결되는 교역권의 복구와 함께 영산강유역의 영역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따라서 해남반도는 백제가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사회를 영역화 하는데 백제의 거점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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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序論 1
      • Ⅱ. 海南半島 古代社會의 歷史的 位置 3
      • Ⅲ. 海南半島 古代社會의 勢力集團 9
      • Ⅳ. 海南半島 古代社會의 對外關係 14
      • 1. ‘甕棺古墳社會’ 로의 編入과 對 中國交流 14
      • Ⅰ. 序論 1
      • Ⅱ. 海南半島 古代社會의 歷史的 位置 3
      • Ⅲ. 海南半島 古代社會의 勢力集團 9
      • Ⅳ. 海南半島 古代社會의 對外關係 14
      • 1. ‘甕棺古墳社會’ 로의 編入과 對 中國交流 14
      • 2. 外勢의 角逐과 海南半島 勢力集團의 對應 25
      • Ⅴ. 結論 39
      • 참고문헌 42
      • 국문초록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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