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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인물 현창사업의 근대적 변화 과정에 대한 연구 -하동지역 충의공 정기룡의 사례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Process of Modern Change in the Historical Figure Commemorative Project -Focusing on the Case of Chungwigong Jeong Gi-ryong in Hadong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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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819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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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background and motive implied behind the activities to commemorate a historical figure by investigating the case of a project to commemorate the one who had been active during Imjin War (the Japanese Invas...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background and motive implied behind the activities to commemorate a historical figure by investigating the case of a project to commemorate the one who had been active during Imjin War (the Japanese Invasion of Joseon) in 1592 for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Even a prominent figure at the time of survival is sometimes forgotten in later generations, while there are many cases that continue to be posthumously commemorated for a long time after death. In some cases, there are many cases in which positive and negative evaluations come and go depending on the political and social context of a particular period.
      In the Joseon era, highlighting the achievements of king Seonjo (宣祖, 1552-1608) was widely used as a way for his descendants to achieve political success, or to increase their social status in the area where their descendants live. In contrast, in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institutional discrimination was abolished, and the possibility of ancestral achievements affecting the political position of descendants is greatly reduced. In spite of this, activities to brighten people who left achievements among their ancestors continued in the communities of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As for Jeong Gi-ryong (鄭起龍, 1562- 1622), Chungwigong (忠毅公), who was born in Hadong (河東) and established achievements in Imjin War, this article examined what significance the modern historical figure commemoration project might have through the case of constructing Gyeongchungdang (敬忠堂), a shrine to commemorate him in the Hadong region in the 1930s. The study results are summarized below.
      First, it is highly probable that the Jeong Gi-ryong commemorative project in Hadong in the 1930s was stimulated by a national fund-raising project that took place at the same time to preserve the remains of Chungmugong (忠武公) Yi Sun-shin (李舜臣, 1545-1598). In 1931, the Chungmugong relic conservation activities centered on “Donga-ilbo” received a great response from the Joseon people at the time. In particular, Hadong gun, the hometown of Jeong Gi-ryong, is adjacent to Noryang (露梁), the site of the fallen admiral Yi Sun-shin, and as in Chungryeol-sa (忠烈祠) in Noryang, a heavy reconstruction project was carried out in the 1920s by the residents of Namhae-gun (南海郡), it may have served as a motive for starting a commemorative project for the descendants of Jeong Gi-ryong of Hadong.
      Second, it was because in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the 'popularization of history' was more advanced than in the Joseon era. From the 1920s, Joseon's history was allowed to be taught in schools by Imperial Japan, and there was a need for books to be used as history textbooks, mainly in private schools run by the Joseon people. Accordingly, many books with the character of an introduction to the Korean history have been published, and after reading this book, some of Joseon people became interested in their history. Because of this historical background, in the 1930s, the Yi Sun-shin relic conservation movement was able to win the favor of many Joseon people.
      Therefore, during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background and factors of various historical figure commemorative projects in various parts of the country were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projects of commemorating ancestors in the Joseon era even though the appearance was similar. It should be interpreted while comprehensively considering the patterns of dissemination of historical knowledge to the general public, including the historical situation so called the Imperial Japan’s Forced Occupation Period, and the conditions in the local community where the commemorative project was being h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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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글은 임진왜란 때에 활동한 역사인물을 일제강점기에 기념하는 사업의 사례를 연구하여,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현창사업에 내포된 배경과 동기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하...

      이 글은 임진왜란 때에 활동한 역사인물을 일제강점기에 기념하는 사업의 사례를 연구하여, 역사적 인물을 기념하는 현창사업에 내포된 배경과 동기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하는 점을 규명하는데 있다. 생존 당시에 저명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후대에 잊히기도 하는 반면, 사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기념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한 시기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따라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오락가락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선조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것이 후손들이 정치적으로 출세하거나, 후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에 비해 일제강점기에는 제도적 신분차별이 철폐되었고, 조상의 업적이 후손의 정치적 지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극히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지역사회에서는 조상 가운데 업적을 남긴 인물을 내세워 현창하는 활동이 지속되었다. 이 글에서는 하동(河東) 출신으로 임진왜란에서 공을세운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 1562~1622)에 대해, 1930년대 하동 지역에서 그를 기념하는 사당인 경충당(敬忠堂)을 세운 사례를 통해 근대의 역사인물 기념사업이 갖는 의미를 고찰하였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1930년대 하동의 정기룡 기념사업은 같은 시기에 벌어진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유적을 보전하기 위한 거국적인 모금사업에서 자극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1931년 동아일보가 중심이 되어 벌인 충무공 유적 보전 활동은 당시 조선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정기룡의 고향인 하동은 이순신의 전몰지인 노량(露梁)과 인접한 지역으로, 노량의충렬사(忠烈祠)에서도 1920년대에 남해군(南海郡) 주민들에 의해 중수사업이 벌어졌기에 하동의정기룡 후손들에게 기념사업을 일으키는 동기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둘째,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대중화’가 조선시대보다 진전되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1920년대부터 조선의 역사를 학교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고, 조선인이 운영하는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역사 교과서로 사용할 서적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한국사 개론의 성격을 갖는 서적이 다수발간되었고, 이 책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갖는 조선인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에, 1930년대 이순신 유적 보존 운동이 수많은 조선인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에 전국 각지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벌어진 역사인물 기념사업은 조선시대에 조상을 기념하는 사업과 겉모습은 유사하더라도, 그 배경과 요인은 조선시대와 전혀 다른 양상이 확인되었다. 경우에 따라 조선시대의 현창사업을 답습하기도 하고, 하동지역 정기룡 현창사업의 사례와 같이 ‘역사의 대중화’나 언론매체 등 근대적 변화에 의해 추동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당 중건이나 신도비 건립 등 현창사업의 결과물만으로 전근대적 현창사업을 답습하였다고 단정짓는다면 지역사회의 근대적 변화상을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현창사업을 조사 연구할 때에는, 현창사업이벌어진 배경과 시대적 상황, 지역사회에서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해석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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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두희, "李舜臣에 대한 記憶의 歷史와 歷史化" 한국사학사학회 (14) : 5-43, 2006

      2 이진욱, "한말 식민지기 통영 충렬사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새로운 추모의례 조직" 한국사회사학회 (121) : 261-287, 2019

      3 "하동향교지"

      4 "하동지"

      5 "하동군사"

      6 최지혜,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인식의 시대별 변화 : 남해군 노량해전 유적․유물을 중심으로"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21 : 2014

      7 "증보 하동군지"

      8 이해준,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경인문화사 2008

      9 "조선왕조실록"

      10 장신, "일제하 민족주의 역사학의 유통 - 박은식과 신채호를 중심으로 -" 한국학중앙연구원 39 (39): 239-26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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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우양 최상철 고희회고록, 나의 행로 칠십년"

      12 "시법: 시호, 한 글자에 담긴 인물평"

      13 "승정원일기"

      14 이윤석, "상업출판의 관점에서 본 19세기 고지도" 열상고전연구회 (38) : 63-99, 2013

      15 정진영, "사족과 농민 -대립과 갈등, 그리고 상호 의존적 호혜관계-" 조선시대사학회 (73) : 153-191, 2015

      16 이기훈, "발명왕 이순신과 잠수함이 된 거북선 ―민족주의 신화의 형성과 확산" 역사문제연구소 (121) : 222-250, 2017

      17 장원철, "문헌 속에 나타난 정기룡 장군" 경상대 경남문화연구소 29 : 2008

      18 "금남면지"

      19 김도형, "겨레가 지킨 위토, 겨레가 세운 현충사"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2019

      20 이대화 ; 한미라, "『대동여지도』로 읽는 19세기 조선" 다빈치미래교양연구소 (15) : 367-407, 2021

      21 박종린, "‘朝鮮史’의 서술과 역사지식 대중화 - 黃義敦의 『中等朝鮮歷史』를 중심으로" 역사문제연구소 18 (18): 212-238, 2014

      22 김도형, "1930년대 ‘이충무공유적보존운동’의 전개와 그 성격"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15 : 2011

      23 윤정, "17세기 李舜臣 사적 정비와 宣祖대 역사의 재인식" 진단학회 (125) : 61-87, 2015

      24 김회룡, "(신)매헌실기" 사단법인 충의공 정기룡장군 기념사업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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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12-3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rklife -> The Journal of Korean Historical-folklife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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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63 0.63 0.65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8 0.66 1.486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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