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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繪畫를 통한 疏通: 朝鮮에 전해진 日本繪畫 = Communication through Paintings: Japanese Paintings sent to Joseo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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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article deals with issues regarding interchange of paintings between Joseon and Japan, focusing on the introduction of Japanese paintings to Joseon. Interests in Japanese paintings go back to the early Joseon period. Japanese envoys from various ...

      This article deals with issues regarding interchange of paintings between Joseon and Japan, focusing on the introduction of Japanese paintings to Joseon. Interests in Japanese paintings go back to the early Joseon period. Japanese envoys from various regions, including Shogun’s envoys, those dispatched by the Shogun himself, arrived in Joseon at this period. They brought diverse offerings including folding screen paintings in gold and fan paintings in gold. Due to an existing preference in Joseon to artworks such as these, they were either used by the loyal members themselves or bestowed to loyal family members or officials. As time passed, the artworks lead into the civilian society as well.
      Folding screen paintings in gold and fan paintings in gold were consistantly offered as a gift throughout the early Joseon period, even after the Korean envoys sent to Japan after the 17th century. These exceptional folding screen paintings in gold were works of the finest court painter groups in Japan, the Kano school and the Sumiyosi school. Reliable written references illustrate the actual arrival and usage of these paintings in Joseon.
      Interchanges occurred both directly and indirectly. Painters such as Shubun and Reisai accompanied the Japanese envoys. In indirect cases, such as that of Sseshu, a master of the Japanese ink painting, Japanese envoys brought his work to Joseon to get compliments by the Korean literati and carried it back to Japan.
      The inflow and preference of Japanese artwork is identified not only in the loyal chambers but also in the civilian society. However, unlike the former case, not many paintings or recordings exist to confirm this tendency. Korean envoys sent to Japan throughout the 17th to the 19th century returned to Joseon brought back paintings of famous Japanese painters. They were regarded highly by the people of Joseon. Japanese paintings originating from unknown channels were also distributed, collected and admired. For example, Kim Gwang-guk, a renowned collector of the 18th century, was recorded to have in possesion a Japanese Ukiyoe, despite his rather low admiration for it. In contrast, Kim Jeonghui, a representative painter and commentator of paintings in the 19th century, owned and well admired a decorative Japanese Bird and Flower painting. He was also known to have seen and was in favor of landscape paintings in Southern school style by Tani Buncho, a represantative Japanese court painter. As seen from examples as these, Japanese paintings were objected to personal and chronological differences.
      Certain cases illustrate efforts to copy Japanese paintings in both the loyal chambers and civilian societies. Cases as such reflect more specific preference of Japanese paintings in Joseon, for the copied pieces were created with regard to it. These pieces are meaningful in that they are useful sources of research to identifying Joseon’s recognition and evaluation in Japanese paintings at the time.
      Japanese paintings that flowed into the cultural pool of Joseon originated mostly from formal diplomatic relationships. Much a portion of them were fine works of important painters in Japan. As a result, people of Joseon sent positive regards to them. The civilian society also illustrated interests, examplified by collection and admiration of Japanese paintings, despite the coexisting positive and negative appreciations to them then. Researches on civilian interrelationships of the criteria remain an challenge due to insufficiency of remaining artworks and recordings. However, the value of such an effort should not be underestimated. Existing evidences support that interchange of painting culture in civilian societies contributed to increase of information and understanding towards Japanese paintings and culture in Jo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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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에서는 일본회화의 조선 유입이라는 관점에서 한일회화교류의 문제를 정리하여 보았다. 조선의 경우 일본회화에 대한 관심은 조선 초부터 확인된다. 조선 초 일본으로부터 국왕사를...

      본 연구에서는 일본회화의 조선 유입이라는 관점에서 한일회화교류의 문제를 정리하여 보았다. 조선의 경우 일본회화에 대한 관심은 조선 초부터 확인된다. 조선 초 일본으로부터 국왕사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의 사신들이 도래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대부분 금박병풍과 채화선을 선물로 바쳤다. 방물 중 이런 작품들이 포함된 이유는 조선에서 이러한 회화에 대한 선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바친 방물들은 궁중에서 사용되거나 종실과 관료들에게 하사되어 민간에 유포되기도 하였다.
      일본 금박병풍과 채화선 등은 조선 초부터 궁중에서 선호되어 일본에 보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후 꾸준히 일본 금박병풍이 선사되었고, 17세기 통신사행 이후에도 주요한 선사품으로 도래되었다. 이 금박병풍들은 일본 최상위 어용화가 집단인 가노파와 스미요시파 화가들이 동원되어 제작된 수준높은 작품들이었고, 이러한 작품들이 실제 조선에 도래하고, 사용된 기록도 전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 슈우분처럼 국왕사의 일행으로 파견된 일본의 주요한 화가와 레이 사이처럼 지역 다이묘의 사신단 일행을 수행한 화가, 일본 수묵화를 정립시킨 셋슈의 경우처럼 사신들이 작품을 가지고 와서 화찬을 받아간 사례 등도 있어서 화가를 통한 직, 간접 교류도 진행되었다.
      궁중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일본 회화의 유입과 선호가 확인된다. 이러한 경우는 기록으로도, 실제 작품으로도 확인되는데 궁중과 관련된 경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기록이나 유품이 많지 않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통신사 수행원들은 일본 유명 화가의 작품을 입수하여 귀국하였고, 이 작품들에 대한 조선인들의 평가도 높았다. 또한 정확한 유입경로는 알 수 없지만 조선에서 유통된 일본회화들도 수장, 감상되었다. 18세기의 대표적인 수장가인 김광국이 일본 우키요에를, 19세기에는 추사 김정희가 일본의 대표적인 어용화가인 다니 분초의 산수화를 보았고, 장식적인 일본 화조화를 소장하였다. 김광국이 화려한 우키요에를 낮게 평가한 반면, 김정희는 다니 분초의 남종풍 산수화와 게이분의 사실적 채색화조화 모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일본 회화에 대한 인식에 개인적, 시대적 편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일본회화를 모사하거나 모방한 경우도 있다. 궁중에서는 일본 금박병풍을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가 모사한 적이 있고, 민간에서는 1811년 통신사 수행화원 이의양이 다니 분초의 남종풍 산수도들을 모방한 사례도 있다. 모사나 모방의 경우 조선 측의 취향이 작용하여 선별된 작품들을 모사, 모방하였기에 일본 회화에 대한 조선 측의 인식과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기록과 작품을 통해 확인된 것은 많지 않지만 여러 가지 정황 상 실제로는 더 많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에 입수된 일본회화는 대부분 공적 교류를 통해서 입수된 것이거나, 일본에 파견된 인사들에 의하여 입수된 것들이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대체적으로 일본에서도 유명한 화가들의 수준 높은 작품이 유입되었고, 그 결과 일본 회화에 대한 조선 측의 인식은 호의적이었다. 그것은 또한 궁중이건 민간이건 간에 일본 회화를 수장하거나 감상한 인사들이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의 기준과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주로 입수된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민간에서는 상대적으로 일본에서의 조선 회화만큼 인기가 높고 수요가 많지는 않았지만 일본 및 일본회화에 대한 관심과 수집, 감상이 있었고, 그런 교류를 통해서 일본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증진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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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머리말
      • Ⅱ. 朝鮮 宮中에 전해진 日本繪畫
      • 1. 朝鮮 前期 宮中에 전해진 日本繪畫
      • 2. 朝鮮 後期 宮中에 전해진 日本繪畫
      • Ⅲ. 民間에 전해진 日本繪畫
      • Ⅰ. 머리말
      • Ⅱ. 朝鮮 宮中에 전해진 日本繪畫
      • 1. 朝鮮 前期 宮中에 전해진 日本繪畫
      • 2. 朝鮮 後期 宮中에 전해진 日本繪畫
      • Ⅲ. 民間에 전해진 日本繪畫
      • 1. 日本繪畫의 收藏
      • 2. 日本繪畫의 移模
      •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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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李裕元, "林下筆記 권30"

      2 박은순, "화원과 궁중회화-조선 초기 궁중회화의 양상과 기능(2)"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6) : 1015-1044, 2006

      3 홍선표, "조선후반기 미술의 대외교섭" 예경 2007

      4 홍선표, "조선후기의 한·일간 화적의 교류" 11 : 19-, 1997

      5 홍선표, "조선후기 한일 간 畫蹟의 교류" 11 : 3-23, 1997

      6 仲尾 宏, "조선통신사이야기" 한울 34-37, 2005

      7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관계사 연구" 지성의 샘 1994

      8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 관계사연구" 경인문화사 44-45, 2006

      9 안휘준, "조선시대 통신사" 삼화출판사 125-147, 1986

      10 황정연, "조선시대 서화수장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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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홍선표, "조선후기의 한·일간 화적의 교류" 11 : 19-, 1997

      5 홍선표, "조선후기 한일 간 畫蹟의 교류" 11 : 3-23, 1997

      6 仲尾 宏, "조선통신사이야기" 한울 34-37, 2005

      7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관계사 연구" 지성의 샘 1994

      8 손승철, "조선시대 한일 관계사연구" 경인문화사 44-45, 2006

      9 안휘준, "조선시대 통신사" 삼화출판사 125-147, 1986

      10 황정연, "조선시대 서화수장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2007

      11 김수진, "조선 후기 병풍 연구" 서울대학교 2017

      12 박은경, "일본 梅林寺 소장의 조선 초기 <수월관음보살도>" 2 : 400-, 1995

      13 이원식, "순조11년 신미일본통신사차견에 대하여" 23 : 61-96, 1973

      14 유홍준,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 항산 안휘준 교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 1 한국 및 동양의 회화" 사회평론 704-721, 2006

      15 권혜은,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국립중앙박물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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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안휘준, "韓國繪畫의 傳統" 문예출판사 190-198, 1988

      19 박효은, "遊戱三昧" 학고재 136-139, 2008

      20 板倉聖哲, "谷文晁" サソトリ―美術館 186-18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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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武田恒夫, "狩野派繪畫史" 吉川弘文館 2004

      25 五十嵐公一, "江戶時代の朝鮮書畫情報" 勉成出版 120 : 154-161, 2009

      26 松下隆章, "水墨美術大系 6卷: 如拙·周文·三阿彌" 講談社 1974

      27 "東洋美術大觀 卷5 第7編" 審美書院 329-466, 1909

      28 김현문, "東槎錄" 혜안 2007

      29 仲尾 宏, "朝鮮通信使をよみなおす" 明石書店 62-63, 2006

      30 吉田宏志, "朝鮮通信使と日本人" 學生社 2000

      31 吉田宏志, "朝鮮通信使と日本人" 學生社 209-, 1992

      32 高麗美術館, "朝鮮通信使と京都" 高麗美術館 2013

      33 山下善也, "朝鮮通信使と京都" 高麗美術館 2013

      34 안휘준, "朝鮮王朝初期의 繪畫와 日本室町時代의 水墨畫" 3 : 2-21,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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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辛基秀, "大系朝鮮通信使 卷8" 明石書店 1993

      41 朝岡興禎, "增訂古畫備考 卷 下" 弘文館 1904

      42 "古畫備考"

      43 加藤秀行, "住吉廣行筆〈春冬堂上放鷹之圖>屛風下繪及び 「朝鮮信使來聘一件書類」" 267 : 191-193, 1970

      44 "世祖實錄 권31, 世祖 9년 윤7월 庚辰(23일) 1번째 기사"

      45 "世宗實錄"

      46 한일관계사학회, "『조선왕조실록』속의 한국과 일본" 경인문화사 24-25, 2004

      47 橋本雄, "『조선왕조실록』속의 한국과 일본" 경인문화사 34-61, 2004

      48 福島県立博物館, "『定信と文晁:松平定信と周 の畫人たち』 展覽會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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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박은순, "19세기「朝鮮書畵傳」을 통해 본 韓日 繪畫交流" 한국미술사학회 273 (273): 133-16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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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박성희, "18·19세기 동래 왜관 수출화의 제작과 유통: 虎圖와 鷹圖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연구소 (31) : 79-102, 2010

      54 신로사, "1811년 신미통신사행과 조일 문화 교류 : 필담·창수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11

      55 정은주, "1811년 신미통신사 빈례(賓禮) 관련 회화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38 (38): 164-194, 2015

      56 황은영, "1811년 신미 통신사 수행화원 이의양" 22·23 : 157-170, 2008

      57 정장식, "1811년 易地通信과 通信使" 한국일본문화학회 (26) : 367-388, 2005

      58 서윤정, "1764년 통신사의 회화활동과 그 교류"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5

      59 홍선표, "17, 18세기 한일 간의 회화 교섭 연구" 143·144 : 22-46, 1979

      60 김광국, "(김광국의) 석농화원" 눌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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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7 0.57 0.5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 0.45 0.523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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