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門集 目錄

石門集
석문집
石門先生文集
石門先生文集
鄭榮邦
정영방
1821
  • 韓國文集叢刊(續)第19集
  • -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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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和凡例


  • 조선 시대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의 문집이다. 본집은 7대손 정인욱(鄭仁勖) 등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821년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본집은 원집(原集) 4권, 부록 합 3책으로 되어 있으며, 권두에 1769년경에 정언충(鄭彦忠)이 지은 서(序), 1802년에 조술도(趙述道)가 지은 서(序), 전체 목록이 실려 있다. 권1~3은 사(辭), 부(賦), 시(詩), 만사(輓詞)이다. 그중에서 사(辭)의 〈일만가기유덕무(日晩歌寄柳德茂)〉는 미인과 이별하며 해가 지는 풍경을 읊어 유덕무에게 부친 것이다. 권4는 서(疏), 서(書), 기(記), 제문, 지갈, 행록, 유사, 잡저이다. 특히 상소는 용궁(龍宮)의 사민(士民)들을 위하여 광해군 때 정해진 하중(下中)의 전답 부세를 하하(下下)로 견감시켜 줄 것을 청하는 것과, 영해(寧海)에 속해 있는 영양을 다시 현(縣)으로 복구시켜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부록은 묘지명, 묘갈명, 제문, 만사, 봉안문, 습유 등이다. 권말에 1732년에 정내주(鄭來周), 1821년에 정필규(鄭必奎), 1821년에 유심춘(柳尋春)이 지은 발(跋)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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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集은 石門 鄭榮邦(1577:宣祖10 ~ 1650:孝宗1)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7代孫 仁勖 등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1821年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4卷 3冊으로 總 20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奎12286)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0.3×17.5(cm)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鄭太鉉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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