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臺集 目錄
淸臺集
청대집
淸臺集
淸臺先生文集
|
|
權相一
권상일
|
|
1797 | |
|
解題和凡例
조선 시대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문인 조석철(趙錫喆)과 증손 준(遵) 등이 가장초고를 바탕으로 수집ㆍ편차하여 1797년 목판으로 간행한 초간본이다. 본집은 원집 16권, 연보 2권 합 9책으로 되어 있다. 권두에 정종로(鄭宗魯)가 1797년에 쓴 서문과 목록이 있다. 권1~4는 시(詩)로, 시체 구분 없이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특히 《퇴계집》에 차운한 시가 많다. 권5는 소(疏), 전이다. 소는 대부분 사직소이고, 전은 1756년에 노병을 위로하여 쌀과 어물 등을 내려준 것에 대해 사례하는 내용이다. 권6~9는 서(書)로, 편지를 주고받은 대상별로 묶어 연대순으로 배열하였는데, 90여 명이 넘는 인사들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권10은 잡저, 명(銘), 상량문, 제문이고 권11은 서(序), 기(記), 발(跋)이다. 권12는 묘갈, 권13은 묘표, 묘지, 행장이고 권14는 행장이다. 권15~16은 관서록(觀書錄)이다. 연보 권1~2는 1790년 ‘희정(僖靖)’의 시호를 받은 일까지 기록된 연보 및 유사, 제문, 만사 등이 실려 있고, 권말에는 조석철이 1796년에 지은 발이 있다.
查看詳細釋放
-
○ 本集은 淸臺 權相一(1679 : 肅宗 5 ~ 1759 : 英祖 35)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門人 趙錫喆과 曾孫 遵 등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編次하여 1797년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6卷, 年譜 2卷 合 9冊으로 總 686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 藏本(圖書番號 : D1-A449)으로서 半葉은 10行 21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8×17.3(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16의 제26板은 落張이므로 同一本인 同館藏本(圖書番號 : 晩松D1-A449)으로 補充하였다.
○ 本集의 標點者는 李承昌이고, 監修者는 成百曉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相關文集
文集名 | 著者 | 出版年 | 著作時代 | DB |
---|---|---|---|---|
해좌집(海左集) | 정범조(丁範祖) | 1867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구사당집(九思堂集) | 김낙행(金樂行) | 1801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입재집(立齋集) | 정종로(鄭宗魯) | 1835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번암집(樊巖集) | 채제공(蔡濟恭) | 1824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성호전집(星湖全集) | 이익(李瀷) | 1922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記事
要看原文,請雙擊目次。
|
按風格過濾文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