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軒集 目錄

思軒集
사헌집
思軒文集
思軒文集
鄭來成
정래성
1860
  • 韓國文集叢刊(續)第100集
  • -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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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和凡例


  • 조선 시대 사헌(思軒) 정내성(鄭來成, 1744~1835)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지락(之洛)이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수습하여 유형진(柳衡鎭) 등과 교감 산정하고 편차하여 유치명(柳致明)에게 행장을 받았으나 간행에 앞서 졸하여, 손자 운규(雲逵)이 이휘녕(李彙寧)에게 받은 묘갈명을 증보하여 1860년 봄에 판각한 뒤 유형진의 발문을 붙여 그 해 여름에 반질하였다. 본집은 6권 3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이 있다. 권3은 서(書), 뇌사(誄辭), 잠(箴), 상량문이다. 서는 정조가 1799년에 영남 명현들의 사적을 수집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렸을 때 자신의 선대 정사성(鄭士誠), 정사신(鄭士信) 등의 사적이 선교 과정에서 누락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김진동(金鎭東)에게 보낸 것이다. 권5는 서(序), 지발(識跋), 잡저, 묘갈명이다. 잡저 가운데 〈경술사장변(經術詞章辨)〉은 경전의 뜻은 궁구하지 않고 외우는 데만 힘쓰는 풍토를 경계하여 지은 것이며, 〈심도기(沁都記)〉는 장녕전 별검으로 있을 때 나라의 보장(保障)인 강화도의 성지, 대사(臺榭), 풍토의 대략을 기술한 것이다. 권미에 유형진이 1860년에 지은 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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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集은 思軒 鄭來成(1744:英祖20~1835:憲宗1)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子 之洛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刪定ㆍ編次하여 柳衡鎭의 校勘을 받은 稿本을, 之洛의 子 雲逵가 1860年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6卷 3册으로 總 182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高麗大學校 中央圖書館藏本(圖書番號:석주D1-A1104)으로서 半葉은 10行 18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19.9×17.4(cm)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梁鴻烈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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