癡庵集 目錄

癡庵集
치암집
癡庵先生文集
癡庵集
南景羲
남경희
1860
  • 韓國文集叢刊(續)第101集
  • -
  •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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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和凡例


  • 조선 시대 치암(癡庵) 남경희(南景羲, 1748~1812)의 문집이다. 본집은 저자의 외손 정헌(定軒) 이종상(李鍾祥)이 저자의 아들 기양(驥陽)과 가장초고(家藏草稿)를 바탕으로 유문을 수습하여 그중 7분의 3을 산삭(刪削)하고 지인들과 함께 교감(校勘)하여 저자의 사후 49년이 되는 1860년에 목판(木板)으로 12권 6책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2권 6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총목록(總目錄)이 있다. 권7은 발(跋), 논(論), 설(說), 찬(贊), 잠(箴), 명(銘), 잡저(雜著)이다. 논 가운데 〈송의론(宋義論)〉은 거록대전(巨鹿大戰)에서 46일 동안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다가 부장인 항우(項羽)에게 죽임을 당한 송의를 논평한 것이다. 〈치암설(癡庵說)〉은 심하게 어리석으나 교화할 수 있는 것이 ‘치(癡)’라고 정의하고 자신의 어리석음 6가지를 들어 자신의 호에 대한 풀이를 하였고, 〈전창위상마설(全昌尉相馬說)〉은 말 감정을 잘했던 선조의 사위 유정량(柳廷亮)이 조련한 과하마(果下馬)와 광해군(光海君) 사이에 얽힌 이야기를 후손에게 듣고 지은 것이다. 권미에 외손 이종상이 1860년에 지은 후지(後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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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本集은 癡庵 南景羲(1748:英祖24~1812:純祖12)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外孫 李鍾祥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刪定ㆍ校勘하여 1860年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2卷 6册으로 總 421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古3428-272)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1.3×17.0(cm)이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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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集名 著者 出版年 著作時代 DB
묵헌집(默軒集) 이만운(李萬運) 1938 朝鮮時代 後期 韓國文集叢刊DB
정헌집(定軒集) 이종상(李鍾祥) 1900 朝鮮時代 後期 韓國文集叢刊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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