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溪集 目錄
修溪集
수계집
修溪先生文集
修溪先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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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升培
이승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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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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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和凡例
조선 시대 수계(修溪) 이승배(李升培, 1768~1834)의 문집이다. 장남 규석(奎錫)이 가장을 짓고, 동생 규섭(奎燮)과 저자의 유문을 수습 편차한 뒤 정상리(鄭象履)에게 교정과 함께 행장을 받는 한편 강세륜(姜世綸)에게도 묘갈명을 받아, 손자 기보(耆輔)가 종제 기영(耆泳) 등과 간행 작업을 재개하여 만사, 제문 등의 부록을 증보하고 목록을 합하여 10권 5책으로 완성한 뒤 황만선(黃萬善)과 감정(勘定)을 진행하여 45일 만에 마무리 짓고, 1865년 목판으로 문집을 간행하였다. 본집은 10권 5책으로 되어 있다. 권수에 1865년 유주목(柳疇睦)이 지은 서와 총목이 있다. 여타의 문집과는 다르게 권별 목록이 권9에 별도로 편차되어 있는 것이 특기할 점이다. 권5는 설(說), 논(論), 잠찬(箴贊), 잡저이다. 설에는 주로 성리학적 주제와 모란과 장기에 대한 내용이 있다. 논에는 상법(相法) 등의 미혹됨을 주장한 〈상명복론(相命卜論)〉과 〈석재론(惜才論)〉 등이 있다. 잠찬 중 〈돈륜잠(惇倫箴)〉에서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요약하였다. 잡저로는 〈독소문(讀蘇文)〉, 〈계아(戒兒)〉 등이 있다. 권말에 1865년 손자 기보가 지은 지(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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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修溪 李升培(1768:英祖44~1834:純祖34)의 文集이다.
○ 本集은 著者의 子 奎錫ㆍ奎燮이 家藏草稿를 바탕으로 蒐集ㆍ整理하여 鄭象履의 校勘을 받은 稿本에, 著者의 孫 耆輔 등이 附錄文字를 增補ㆍ再編하여 柳疇睦의 再校를 받아 1865年 木板으로 刊行한 初刊本이다.
○ 分量은 10卷 5册으로 總 389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延世大學校 學術情報院藏本(圖書番號:811.98/이승배/수)으로서 半葉은 10行 20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20.4×17.0(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卷10은 卷首題의 卷次가 漏落되어 있고, 第27ㆍ28板은 板次가 각각 「二六」ㆍ「二七」로 誤記되어 있다.
○ 本集의 標點者는 吳圭根이고 監修者는 趙昌來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相關文集
文集名 | 著者 | 出版年 | 著作時代 |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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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집(制庵集) | 정상리(鄭象履) | 1873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계당집(溪堂集) | 유주목(柳疇睦) | 1928 | 朝鮮時代 後期 | 韓國文集叢刊DB |
記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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