冠巖全書 目錄
冠巖全書
관암전서
冠巖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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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敬謨
홍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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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和凡例
조선 시대 관암(冠巖) 홍경모(洪敬謨, 1774~1851)의 문집이다. 《관암전서》는 시문 중 상당수를 가려 뽑은 것으로, 저자가 자신의 시문을 종합하려는 의도에서 자편한 것으로 보인다. 《관암전서》의 체재는 저자가 개편한 《총사》와도 상이하고, 저자의 저술 내에는 편찬에 대한 언급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저자 70세 이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32책으로 되어 있다. 분권은 되어 있으나 권차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대체로 각 권에 실린 문체에 따라 따로 목록을 만들었는데, 책12에는 목록이 없다. 책10은 명(銘), 상량문, 전(傳)이다. 전 가운데 〈정생전(鄭生傳)〉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홍도전(紅桃傳)〉과 같은 내용으로 임진왜란 당시 가족의 만남과 헤어짐을 서술한 글이다. 책25는 발미(跋尾)이다. 국조어묵(國朝御墨)이라는 편명 하에 조부와 저자가 수집한 역대 국왕의 필적에 대한 글이다. 〈열성조어필첩(列聖朝御筆帖)〉에 문종(文宗), 세조(世祖) 등의 필적을 수록하고, 〈원릉신한첩(元陵宸翰帖)〉에 영조(英祖)의 필적 12건을 수록하였다. 이밖에 인목왕후(仁穆王后), 장헌세자의 필적에 대한 언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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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本集은 冠巖 洪敬謨(1774:英祖50~1851:哲宗2)의 文集이다.
○ 本集은 書寫經緯가 分明하지 않은 罫印寫本이다.
○ 分量은 不分卷 32册으로 總 1805板이다.
○ 本 影印底本은 서울大學校 奎章閣藏本(圖書番號:古3428-263(1))으로서 半葉은 8行 18字이고 半郭의 크기는 18.9×14.4(cm)이다.
○ 本 影印底本 중 一部 頭註의 內容과 校正簽紙의 內容은 匡郭 左右에 移置하고 原位置에 「*」로 標示하였고, 簽紙 附着範圍의 明示가 必要한 경우 「『』」로 標示하였으며, 簽紙 內容이 長文인 경우 册2의 第58板 前葉의 第1行과 第2行 사이, 册19의 第54板과 第55板 사이, 第60板과 第61板 사이, 册27의 第16板 前葉의 第7行과 第8行 사이에 編入하였다. 그리고 校正簽紙가 白紙인 경우에는 그 附着範圍만 「『』」로 標示하였다.
○ 本集의 標點者는 趙昌來이고 監修者는 吳圭根이다.
한국문집총간 DB에서 사용된 부호는 다음과 같다.
。 :문장 안에서 구(句)나 절(節)의 구분이 필요한 곳과 문장의 끝에 사용하였다.
묘도문이나 부(賦), 사(辭) 등에서 銘曰, 辭曰 등의 뒤에 사용하였다.
대구(對句), 연구(聯句) 등 운문의 각 구마다 원주로 저자를 표시한 경우, 각 구의 끝뿐 아니라 원주 뒤에도 사용하였다.
, :인명, 지명, 관직명, 서명 등이 나열되어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에 없는 제목이나 본문 내용을 생성하였을 때 사용하였다.
글의 저자가 문집의 저자와 다른 경우, 제목 옆에 저자를 밝히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저본에서 작은 글씨로 구분된 按, 增 등의 글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제목이나 원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이 달라져 구분이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다.
▣ : 저본의 결자(缺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 없는 마멸자(磨滅字)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 : 저본의 묵등(墨等 검게 칠해진 부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밑줄 :교감주, 난외주 등 원주를 제외한 주석의 대상이 되는 표제어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림 :도식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도’로 표시하고, 소자(小字)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회화에 가까운 그림은 하단에 ‘삽화’로 표시하고 소자로 제목을 병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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