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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22한일관계사연구This paper looks at the lives of women during the Imjin War through Oh Hui-mun's wartime diary Swaemirok. When the war broke out, Joseon's wom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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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순2022일어일문학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social relationship of Yeo Dae-nam, who was captured and taken to Japan during the Imjin War i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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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2022한국학After arriving in Beijing and offering the Pyojamoon (表咨文), the Joseon envoys asked for answers to the documents related to the purpose of the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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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20국학연구론총Buddhist Master Seosan was the leader of the Righteous Monk-Army during the Imjin War. His activities served as an asset for Joseon to overcome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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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2019대구사학「하멜 표류기」(1668) 이후 서구사회에 한국이 소략하나마 역사서술의 대상으로 이런저런 문헌들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 개항을 전후한 시기부터였다. 1883년 조독수호통상조약 이후 한국은 약탈적 무역시장의 잠재적 대상으로서 단독 호명되기 시작했고, 한국에 대한 정보는 탐사보고문 형식으로 간헐적으로 생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상대적으로 한국 체류기간이 길고 집단지성의 상호작용을 거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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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8한일관계사연구이 논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교섭 결렬 선언 이후, 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조선의 재침 대응책을 살펴보았다. 강화교섭기 통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황신은 교섭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사행록인 『日本往還日記』를 통해 강화교섭의 결렬 당시의 상황에 접근할 수 있다. 황신은 일본에서 미리 사람을 보내어 이 소식을 전하였고, 부산에 도착한 후에는 조정에 보고서를 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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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2018한일관계사연구임진전쟁기 명군과 일본군 사이에서 진행된 강화교섭에 조선은 개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화교섭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지 않고 전쟁에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조선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독자적으로 일본군과 접촉하여 정보를 얻고자 한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중에서도 전선에서 대치 중이던 조선군 장수들과 일본군의 접촉에 주목했다. 두 진영 사이의 교섭 내용은 일본군 나베시마 나오시게 가문 계열의 사료인 『泰長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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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2017한일관계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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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덕기2013한일관계사연구『고대일록』은 함양의 士族인 정경운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 4월부터 1609년까지 18년 동안 쓴 일기로, 1980년대 최초로 공개되어 그동안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사통팔달하는 함양의 선비 정경운이 접한 풍부한 정보에 대한 검토 분석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다. 본 논문은 정경운이 접한 정보 중에서 官報등의 위로부터의 중앙정보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지방정보, 예를 들어 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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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영2012韓國史學史學報16세기의 조선은 유럽의 세계 시스템에 처음 노출되는 시기였다. 유럽 문명의 영향을 받은 일본은 戰國을 통일하고 그 여세로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도요또미의 야망에 의하여 조선은 전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 질서의 변화 가운데 16세기 동아시아를 뒤흔든 ‘후기 왜구’가 조선에서는 어떻게 인식되었고 ‘후기 왜구’와 임진왜란의 관련성, 그리고 조선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북로남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