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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울산‧언양 지역 교육 실태 조사 연구 = A Study on Local Education System of Ulsan‧Eonyang Area in the Lat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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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울산과 언양 지역에 존재하였던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그 설립과정과 운영의 실제를 알 수 있는 기록들을 수집하여 18세기 이후 울산‧언양 지역의 교육 실상을 살펴...

      본 연구는 조선 후기 울산과 언양 지역에 존재하였던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그 설립과정과 운영의 실제를 알 수 있는 기록들을 수집하여 18세기 이후 울산‧언양 지역의 교육 실상을 살펴보고, 지역 내에서 이루어졌던 문풍 진작을 위한 교육적 노력의 의의를 밝히고자 한다. 울산‧언양 지역은 조선의 ‘추로지향’이자 유학의 본고장이라 자부하는 영남에 위치한 고을이었지만, 울산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국방상의 요충지로, 언양은 작고 가난한 산간벽지로 학구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울산‧언양 지역에서 이루어진 교육 및 흥학 활동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있으며, 그러한 언급들은 조선 후기 향촌 교육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현재의 울산광역시는 조선시대의 울산부과 언양현을 아우르는 지역인데, 두 지역은 태화강으로 이어진 이웃 고을이었다. 울산부는 지정학적 위치상 일본과의 교류에 매우 중요한 거점이자 외적 침략의 위험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곳이기도 하였기에 일찍이 무(武)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언양현은 경상도에서 손꼽힐 정도의 작은 규모의 벽촌이었다. 그러나 이 두 지역은 수려한 경관과 천혜의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풍류의 거점, 누정과 재사 등이 다수 존재하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지역의 여러 문인들은 풍류를 즐기며 교류하였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여러 기록을 통해서 울산과 언양 지역의 향교는 조선 초기부터 존속했으며, 이후 양난과 자연 재해 등의 이유로 몇 차례 이건이 이루어졌고, 17세기 중반을 전후로 현재의 터에 자리 잡은 후 현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울산‧언양 지역의 선비들은 고을의 사풍이 쉽게 진작되지 않자, 그것이 향교의 터가 길하지 않음에 의한 것이라는 이유를 삼아 여러 차례 재이건을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고을 수령들은 선비들이 지령의 탓만 일삼고 배움에 힘쓰지 않는 마음가짐에 대해 꾸짖었던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실제로 울산‧언양 지역의 향교는 현재의 터에 자리 잡은 이후, 부단한 수즙(修葺)을 이루고 지역 유사와 유생들이 배움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18세기 이후 한 명의 문과 급제자와 여러 명의 소과 입격자를 배출시키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뿐만 아니라 울산과 언양에는 각각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구강서원, 반구서원을 시작으로 이후 여러 개의 서원이 설립되었으며, 이로 인해 보다 넓은 범위에서 학풍의 진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서원은 관의 지원과 지역 유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설립‧운영 되었으며, 특히 울산의 유일한 사액서원인 구강서원은 사액되는 과정에 있어서 지역 유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구체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어 더욱 의미 있다. 이와 더불어 지리지와 지역 문인들의 작품 및 연보에 언급되어 있는 향교, 서원 외의 기타 강학처, 각종 재실과 정자들 또한 그 내용이 적지 않다.
      조선 후기 울산‧언양 지역의 교육기관과 활동에 대한 기록에는 기존의 조선 후기 향촌 교육 명목론 또는 쇠퇴론에 배치되는 내용이 상당 수 있다. 특히 이러한 기록들은 1732년 왕명에 의해 전국에 반포된 조현명의 ‘권학절목’이 반영된 실제의 운영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 이와 같은 교육활동의 사실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 꾸준히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영조 20년(1744)에 완성된 『속대전』의 향교 교관 정원 내용 삭제가 곧 향교의 교육 기능 상실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기존의 시각 역시 울산‧언양 지역의 기록에 의하면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조정에서 향교 교관을 더 이상 파견하지 않았다는 것은 향교의 교육 기능 상실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향촌 자치 내에서 충분히 교수요원이 충당이 가능해졌다는 사실로 보아야 하고, 실제로 울산의 경우에도 지방관이 직접 향교의 도훈장을 뽑았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 후기 지역의 향촌교육기관에서는 강학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실상 교육 기능이 쇠퇴하였다고 보는 기존의 통념에 대해 조선 후기 울산‧언양 지역의 교육 활동에 대한 기록이 갖는 의미는 실로 크다. 조선 후기 지방 교육에 대한 기존의 편파적인 관점과는 달리 조선 후기 울산과 언양의 다양한 교육 기관에서 여러 형태의 교육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무풍이 득세하고 문풍이 열악하였다는 별 볼일 없는 고을에서조차 고을의 유림과 지방관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흥학의 노력과 함께 구체적인 강학 및 문예활동의 실제가 있었으며, 이러한 움직임조차 임의가 아닌 범국가적인 체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사실은 조선 후기 향촌 교육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 다시 수정되어야 할 가능성과 필요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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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Ⅰ. 서 론 1
      • Ⅱ. 울산언양 지역의 특성과 문화적 환경 7
      • 1. 울산언양 지역의 연혁 7
      • 2. 조선시대 울산언양 지역의 특성 10
      • 3. 조선시대 울산언양 지역의 문화적 환경 13
      • Ⅰ. 서 론 1
      • Ⅱ. 울산언양 지역의 특성과 문화적 환경 7
      • 1. 울산언양 지역의 연혁 7
      • 2. 조선시대 울산언양 지역의 특성 10
      • 3. 조선시대 울산언양 지역의 문화적 환경 13
      • Ⅲ. 조선 후기 울산언양 지역의 교육 기관과 활동 16
      • 1. 향교의 설립과 교육 활동 16
      • 2. 서원의 설립과 교육 활동 38
      • 3. 그 밖의 강학처(講學處)와 교육 활동 56
      • Ⅳ. 조선 후기 울산언양 교육 실태의 교육사적 의의 69
      • Ⅴ. 요약 및 결론 73
      • 참고문헌 78
      • Abstract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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