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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 詩壇의 袁枚 詩論 수용 양상 = The Study on the Acceptance about Wonmae's poetics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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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T14169639

      • 저자
      • 발행사항

        서울 :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6

      •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2016. 8

      • 발행연도

        2016

      • 작성언어

        한국어

      • 주제어
      • 발행국(도시)

        서울

      • 형태사항

        180 p. : 삽도 ; 26 cm.

      •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이도흠
        권두 국문요지, 권말 Abstract 수록
        참고문헌: p. 172-180

      • 소장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우편복사 서비스
        •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소장기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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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袁枚(1716∼1797)는 청대 性靈派의 거두로서 청대 시단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시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본고는 조선 후기 문인들이 원매의 시론을 수용하는 배경과 양상 그리고 문학사적 의...

      袁枚(1716∼1797)는 청대 性靈派의 거두로서 청대 시단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시단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본고는 조선 후기 문인들이 원매의 시론을 수용하는 배경과 양상 그리고 문학사적 의의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선, 조선 후기 문인들이 원매를 수용한 배경을 외재와 내재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보았다. 18세기에 청나라는 남방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러시아와의 북방 변경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국내외의 정세는 전대보다 안정되었다. 청나라는 이를 바탕으로 조선사신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였다. 이에 ‘천애지기’를 맺고 싶은 조선 문인들과 이들에 관심을 가진 청나라 문인들이 북경 유리창을 거점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이 교유를 통하여 조선 후기의 문인들은 원매를 추종하고 가깝게 지낸 이조원, 장문도, 나빙 등 청나라 문인들을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누며 원매와 그의 ‘성령’ 시학을 알게 되었다. 이는 나중에 원매의 시학이론이 조선으로 수용되어 조선 문인들이 이를 인식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것이 원매 시학 이론 수용의 외재적 배경이다. 
      원매가 조선 후기 시단에서 널리 수용될 수 있었던 내재적 배경도 있다. 18세기부터 원굉도의 영향 등으로 조선 시단에서 의고를 비판하여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창신’ 기풍이 나타났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한 원굉도의 영향으로 18세기 조선 시단에서는 ‘奇’와 ‘怪’의 기풍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조선 문인은 의고의 폐단을 없애버림을 긍정하는 입장에서 다시 ‘창신’의 방법을 반성하였다. 특히 18세기 후기에 이르러 조선 시단에는 맹목적 복고와 맹목적 창신을 모두 지양하고 ‘고’와 ‘금’의 관계를 대등하게 간주하려는 ‘法古創新’, ‘古體吾文’, ‘適意’의 이념이 나타났다. ‘고’와 ‘금’의 한계를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옛것을 완전히 배척하지 않은 원매 시학의 주지는 조선 후기 시단의 흐름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18세기 후기∼19세기의 조선 시단에서 옛것을 완전히 배척한 원굉도 시학의 지위가 원매 시학의 지위를 따라갈 수 없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원매가 정식으로 조선에 수용된 과정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그 과정은 대개 ‘연암그룹’ 문인들의 초보적 전파단계와 『수원시화』를 열독하고 배우는 심화적 수용단계로 나눌 수 있다. 초보단계에서 ‘연암그룹’ 문인은 이조원이 원매의 개인정보와 회고시를 유금에게 알려준 것을 통해 원매라는 인물과 그의 시를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문집에서 원매를 찬양하는 시가를 썼을 뿐만 아니라 시화집 혹은 작품집에서 원매에 대한 정보와 그의 회고시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이덕무의 『청비록』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비록 원매에 관한 정보는 사실과 일부 차이가 있었더라도 ‘연암그룹’의 문인은 거의 『청비록』의 기록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소설적 기법과 상상력으로 원매와 관련된 장면을 묘사한 기사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 시기 ‘연암그룹’ 문인의 원매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한계가 있었지만 그들의 기록과 전파로 인하여 원매의 이름은 조선 후기 시단에 널리 알려졌다. 나중에 18세기 말∼19세기 초에 이르러 원매『수원시화』의 正編과 補遺가 잇달아 유입되면서 조선 문인은 『수원시화』를 널리 열독했으며 이를 경쟁적으로 정리하고 인용하였다. 이런 현상은 조선 후기 문인이 원매의 시학이론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서 나아가 원매 시학의 깊은 의미까지 이해하고 활용하는 심화 단계로 나아갔음을 입증한다.
      다음, 조선 후기 시단에서 이옥, 최성환, 추사일파 문인들의 원매 시학 수용양상을 ‘성정의 긍정’, ‘시선집의 편찬’, ‘시론의 재구’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살펴보았다. 이옥의 『이언』은 시화집 『백가시화초』와 같이 『예림잡패』에 수록되어 있었다. 『백가시화초』는 이옥이 원매의 『수원시화』를 초록하는 시화집으로서 전통 시교관과 ‘온유돈후’설을 지양하는 내용과 시가를 많이 초록하였다. 『이언』의 「三難」 역시 원매가 ‘시교관’의 구속을 벗어나 남녀의 ‘진정’을 긍정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이옥이 바름을 드러내는 것이든 천박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든 사람의 진실한 정감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모두 ‘진정’으로 인정한 것은 원매의 시학에서 강조했던 ‘宜厚宜薄’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이옥의 이런 지향은 사람의 속된 성정을 매우 강조하는 원굉도의 시학과는 같지 않다.
      최성환은 원매 『수원시화』의 영향을 받아 『성령집』을 편찬하여 시를 선별할 때 진부하고 상투적인 창작 풍격을 지양한 동시에 시인의 신분과 성별, 시가의 체제와 체격에 구속되지 않고 성령을 드러내는 시가라면 모두 수록하였다. 이에 『성령집』은 원매의 『수원시화』에 수록된 여성 시인과 염정시 뿐 아니라 ‘拔俗’, ‘風趣’의 풍격을 지닌 시가를 많이 초록하였다. 전통 시론에서는 비천한 사람과 여자는 모두 시를 쓰는 자질을 갖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따라서 전통 시론을 따른 조선의 사대부에게 하층 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시가는 자연히 가치가 떨어지므로 선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성환은 『성령집』에서 ‘红粉’뿐만 아니라 ‘青衣’, ‘布衣’, ‘方外’ 등 하층계급에 속한 사람들의 여러 수의 시가를 수록하였다. 이처럼 최성환은 시인의 신분과 성별의 구속을 타파하고 시가의 풍격을 해방하려 하였다는 측면에서 진보적인 의의가 돋보인다. 최성환은 『수원시화』를 통독하는 과정에서 원매의 채시관을 수용하고 전통 시론을 지양하고 이에 도전하였다.
      추사 일파 문인들의 원매를 인식하는 시각은 각각 같지 않고 그들이 원매를 수용한 정도도 차이가 존재하였다. 예컨대 격조를 타파하는 측면에서 김정희는 옹방강의 학문을 계승했으므로 원매 성령론의 가치를 어느 정도 긍정했지만 동시에 격조론의 영향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하였다. 이에 반해 조희룡은 원매의 영향을 받아 격조론에서 강조했던 ‘定格’ 사유를 무너뜨려 시가 창작의 ‘전범성’과 ‘유일성’을 지양하며 시가 격식과 풍격의 다양성을 지녀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아표현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추사 일파 문인들은 모두 원매와 같이 시가 격식과 풍격의 다양화를 강조하는 그 최종 목적은 자신 일가의 풍격을 세우는 데에 있다고 여겼다. 이에 그들의 시론에서는 시인의 개성과 독창성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가 창작 과정의 자연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명대 공안파에서 제창했던 ‘창신’의 내포를 다시 정의하는 측면에서 조희룡과 조면호는 ‘창신’이란 옛것을 맹목적으로 배척하여 ‘신’과 ‘기’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옛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정수를 잘 변별해서 흔적 없이 바꾸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추사 일파의 문인들의 창신에 대한 태도는 원굉도의 “棄古”을 벗어나 “化古”로 전변하였으니 이는 원매의 영향이다.
      마지막, ‘전범성의 탈피’와 ‘자유로운 성정의 발현’ 그리고 ‘여성 시가의 재인식’ 세 가지 측면에서 조선 후기 원매 수용의 문학사적 의의를 살펴보았다. 원매의 시학 이론에서 개성과 새로운 것을 강조하면서 ‘기’와 ‘괴’의 폐단을 지양하는 정신은 18세기 조선 시단에서 의고를 비판하면서도 맹목적인 ‘창신’을 반성하는 조류와 부합한다. 원매의 영향을 받은 조선 후기 문인 신위와 정지윤 그리고 김정희는 ‘기괴’의 문제를 지양하며 전통적 시가 양식과 詩想, 이미지를 탈피하여 새로운 모습을 운용하는 시가를 썼다. 또한 원매가 시가에서 성정을 자유롭게 드러내고자 한 생각은 조선 후기의 성정의 자유를 희구하는 시가 창작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 전통 시교관에서는 ‘온유돈후’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성정을 드러내는 방식과 정도가 늘 제한되었다. 이옥은 기생이 정조가 있다는 여성이라고 표명하고 싶은 말과 아내가 저주하는 정도까지 남성을 원망하는 정감을 묘사하였다. 조선 후기에 상품화폐 경제가 발전한 배경에서 조면호는 선비들의 명분론에 대한 구속을 타파하여 돈과 재부를 긍정하고 또한 합리적으로 추구하자는 정감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또한 원매가 자신의 시선집인 『수원시화』에서 여성 시인과 시가를 높이 평가하며 상당수를 수록하였던 점과 그가 강남 지역에서 여성 제자를 널리 받고 서로 교유하여 시회를 열기도 하였다는 것은 조선 시단에게 여성 시인과 시가에 대한 재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원매의 여성 시인과 시가를 긍정하는 이념은 조선 후기 시가와 시학평론에서 여성 시인의 창작 지위와 가치를 인정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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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Wonmae is the leader of Seongryeong faction in Qing Dynasty, His poetics of Seongryeong was received a high reputation in the period of Qianlong and Jiaqing, its influence also spread overseas. This paper studies on the background, content and effects...

      Wonmae is the leader of Seongryeong faction in Qing Dynasty, His poetics of Seongryeong was received a high reputation in the period of Qianlong and Jiaqing, its influence also spread overseas. This paper studies on the background, content and effects of acceptance about Wonmae's Poetics in the later period of the Chosun. The main contents are as follows:
      The Chosun scholars' acceptance of Wonmae’s poetics had two aspects of internal and external background. First, in the 18th century, the Qing Dynasty had tended to be stable in culture and politics at home and abroad, The Qing government relax control on "Chosun’s legation" and then make the Korean people to freely access Chosun`s legation. Literati of Qing communicated with scholars of Beijing's Liulichang in this time. In this period, Wonmae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Li Diaoyuan, Zhang Wentao, and Luo pin who exchanges frequently with Chosun literati. The phenomenon of this kind of communication had become the external cause of the spread of Wonmae’s poetics. Second, Chosun poetry appeared critical retro and promoted innovation thoughts in the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almost at the same time. Also Chosun scholars began to self-examination of blind innovation and appeared to reconcile the literary tone of "restoration" and "innovation", the literary background, Which became the internal cause of Wonmae poetics accepted by Chosun scholars.
      Of course, in the process of incoming, the scholars of “Yonam Group" in the later Chosun who played play a great role, it is because they records Wonmae in their essays and poetry. This made Chosun literati known about Wonmae. From end of the 18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19 century, the acceptance of his poetic was entering a new stage with the afferent of “隨園詩話", Which was mainly reflected on the acceptance and learning with “隨園詩話", such as Lee Ok, Choi Seonghwan etc. And poetic theory of “Chusa Group" was just like this.
      The affirmation of “temperament" and “Poems of men and women" mentioned by Lee Ok accepted from Wonmae’s theory. For example, Lee Ok had copied poetics and poems from the “隨園詩話" and compiled a book which was named “百家詩話鈔" including the contents about the affirmation of the poems. Unlike blindly respected vulgar orientation of the Gonganpa Won Goengdo, Lee Ok also affirmed the value of orthodox poem in the slang and proverb, He thought whether it was vulgar or noble, as long as it was for the truth, it was a good poem. This concept was just from the Wonmae spirit contained in “宜薄宜厚".
      Choi Seonghwa compiled “性靈集" affected by Wonmae “隨園詩話". He resisted the banal atmosphere in the compilation process regardless of the poet's identity, gender and subject of poetry, as long as it was to highlight the spirit of poetry. In addition, his pursue of “拔俗" and “風趣" style had also been affected by Wonmae. Cui Xinghuan broke the principle of the elite in the traditional poetry, and paid more attention to the lower literati, which promoted the growth of the poet group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The scholars of “Chusa Group" had different understanding of Wonmae’s poetics, and they all had different degrees of acceptance. For example, Kim Jeonghui and Jo Huiryong affected by the Poetics of Seongryeong of Wonmae were against “定格" thinking in the revivalism and advocated a variety of creative style. “Chusa Group" literati opposed to analog and advocated the nature of poetry; Cho Myeon-ho and Cho Hee-ryong had the new understanding of “innovative" affected by Wonmae, to got rid of the philosophy of “棄古", in turn, to accept the spirit of “化古”.
      Finally, spread and acceptance of Wonmae’s poetic in Chosun had brought the profound influence to the later period of Chosun. First, his pursue bout poetry diversity deeply influenced Chosun, so poets of Joseon gradually started innovation in the poetry creation. Second, under the influence of his "truth" advocate, Korea later poetry creation gradually get rid of the bondage of “溫柔敦厚” and highlighted the outpouring of the spirit of true temperament. Finally, Wonmae had received a lot of the praise of women poetry in the “隨園詩話”, which stimulated the later Chosun recognize women poets, and promote the development of the female poets from wide range of fem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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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 국문요지
      • Ⅰ. 서론
      • 1. 문제제기 1
      • 2. 연구사 검토와 연구 방법 2
      • ◇ 국문요지
      • Ⅰ. 서론
      • 1. 문제제기 1
      • 2. 연구사 검토와 연구 방법 2
      • Ⅱ. 袁枚 詩論의 흥기와 특징
      • 1. 청대 시단의 동향과 원매 性靈說의 대두 8
      • 2. 원매 詩論의 특징 19
      • Ⅲ. 조선후기 시단의 動向과 袁枚 수용 과정
      • 1. 조선후기 시단의 동향 34
      • 2. 朝清詩人의 교류 양상 49
      • 3. 北學派 시인의 袁枚 인식 과정과 『隨園詩話』의 수용 66
      • Ⅳ. 조선 후기 袁枚 詩論의 수용 양상
      • 1. 李鈺의 『俚諺』과 원매의 性情觀 영향 84
      • 2. 崔瑆煥의『性靈集』편찬과 원매의 採詩觀 영향 100
      • 3. 秋史 일파의 袁枚 수용과 시론 재구 114
      • Ⅴ. 조선후기 袁枚 詩論 수용의 문학사적 의의
      • 1. 典範性의 탈피 146
      • 2. 자유로운 성정의 발현 152
      • 3. 여성 작가 지위의 재인식 156
      • Ⅵ. 결론 168
      • ◇ 참고문헌
      • ◇ Abstract
      • ◇ 연구윤리서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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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논문관계도

      1 車柱環, "中國詩論", 서울대학교출판부, 1989

      2 鄭後洙, "鄭芝潤論", 『한성어문학』7, 한성어문학회,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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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윤조, 박종채, "역주, 『과정록』", 태학사, 택학사, 1997

      5 강명관, "『안쪽과 바깥쪽』", 소명출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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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윤조, 박종채, "역주, 『과정록』", 태학사, 택학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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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이승수, "「三淵金昌翕研究」",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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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장안영, "「정지윤의 시세계」", 중앙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교양논총』5, 중앙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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